[반딧불] “한글 배우고 싶어요”..

반딧불]“한글배우고싶어요”손자교실에앉은할머니

광주=류정기자well@chosun.com
입력:2007.02.1400:12/수정:2007.02.1410:00

작년3월어느날,경기도광주분원리분원초등학교1학년교실에는할머니한분이숨어있다가발각된일이있었다.박군자(65)할머니는아침마다손자세진(7)군의손을잡고등교를도왔다.그러곤곧바로돌아가지않고교실내한구석을막아만든간이도서실에몰래앉아있었다.담임교사는할머니가손자를너무사랑해‘과잉보호’하는줄로만알았다.

“할머니,앞으로아이는제가잘돌볼게요.이제가셔야죠.”

“그냥뒤에서조용히있을게요,선생님.”

할머니는의외로완강했다.교사와숨바꼭질을벌인지한달후쯤,할머니는뜻밖의사정을털어놨다.

“선생님,부탁입니다.저한글좀가르쳐주소.자식들한테편지써보는게소원이오.”

박할머니의한글공부는그렇게시작됐다.할머니는6·25전쟁직후초등학교에입학했지만수업료를내지못해4개월만에그만둬야했다.이후농사를지으며아들을대학까지보냈지만,못배운한(恨)은지워지지않았다.

손자세진이의담임김원희(51)교사는그때부터매일할머니에게한글을가르쳤다.‘가나다라’부터받침있는글자까지,손자뻘아이들보다훨씬더뎠지만포기하지않았다.이소식이분원리노인정에퍼지자동네할머니들사이에서난리가났다.

“나도배우면안될까?”“혼자만학교다니면무슨재미여~.”

어려운어린시절을보낸,더욱이여자여서한글조차배우지못한할머니들이세진이할머니를보고용기를냈다.

결국올해1월4일,‘분원리할머니한글교실’이정식으로문을열었다.입학생은12명.최연소65세,최고령84세인‘1학년-할머니반’이탄생했다.수업은매일오전10시부터2시간.지난8일기자가찾은한글교실에선받아쓰기공부가한창이었다.김교사가‘노루’를외치자할머니들은연필에침을발라가며‘노루’를적었다.그런데‘ㄹ’은어려웠나보다.사영숙(71)할머니는‘노구’로적었다.이번엔난이도가높은‘로켓’이다.‘루켓’,‘노켓’,‘노캣’….어린아이처럼잘도틀렸다.할머니들은한글을알게된기쁨을이렇게표현했다.

“60년간안보였던세상이보여너무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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