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ass="style2"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LINE-HEIGHT:100%"ABC방송국의워싱턴특파원소냐크로포드앵커우먼(35).미전역에방송되는‘월드뉴스’를진행하는그의입에서유창한한국말이쏟아져나오면사람들은깜짝놀라곤한다.외모를보면영락없는외국인이기때문이다.
소냐크로포드씨는미국인선교사아버지와한국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난한국계혼혈.한국서태어나고등학교까지마치고미국에와서스탠포드대학에서정치학과커뮤니케이션을전공했다.이후라디오방송기자,프로듀서(PD),TV방송리포터등다양한경험을쌓았다.
NBC전국방송LA지사에서3년간PD로근무하면서는TV속아카데미상이라불리는에미상수상의영광까지안았다.당시‘데이트라인NBC’라는프로중한코너를맡아O.J.심슨재판에관한내용을다뤘을때였다.
“라디오방송기자시절에는빠르고정확하게글쓰는법을,방송국PD시절에는신선한기획력,효과적인프로그램제작법등을배웠어요.”
무슨일을하든항상노력하고그속에서배울점을찾아서자기발전으로연결시키는것이그의큰장점이다.2002년가을ABC전국방송특파원으로워싱턴DC에오게된그는이후4년간새벽,밤근무를거쳐지난2월부터주말방송을맡고있다.
이처럼놀라운이력을가진크로포드씨의옛모습을기억하는한인들도적지않다.고교생이던80년대후반에한국에서이미TV·라디오방송출연,모델,CF,영화출연등다양한활동을했기때문.
처음방송계에입문한것은고교2학년생때였다.라디오방송에일주일간특별DJ로출연하면서팝송영어가사를한국말로재치있게소개,주목을끌었다.이를계기로KBS방송국‘전국은지금’프로에서‘영어한마디’코너를맡으면서부터전국적으로관심을받기시작했다.1988년서울올림픽당시에는리포터로활약한크로포드씨.학교에서도연극반단원,학교신문사편집장,농구·배구팀의치어리더로활동하며바쁜학창시절을보냈다.국제고등학교에다니는4년간배운스페인어실력으로1992년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리포터로일할만큼우수한학생이었다.
“일과학업을동시에병행하는것이쉽지는않았어요.매일아침일찍방송을마친후학교에가는강행군의반복이었거든요.하지만항상‘이보다더잘할수있다’는마음가짐으로힘든시절을잘극복할수있었어요.”
또한지금의그가있기까지무엇보다부모님과가족의뒷받침이가장컸다고한다.
“특히어머니는항상제게많은일을해보라고조언해주셨어요.무엇을하고싶은지,장차무슨일을할지결정하기전에가능한많은경험을쌓아보라고요.어머니한테감사드려요.”
하지만크로포드씨는놀랍게도앞으로1년후,5년후같은구체적인계획을세워본적은없다고한다.
“먼미래는생각해본적이없어요.저한테는1년뒤도너무멀게느껴지는걸요.하루하루최선을다해열심히사는게전부예요.지금까지처럼하나님뜻에따라살고싶어요.”
앵커우먼으로서지금은눈에띄지않는곳에서세상을변화시키는일반인들을많이소개해보고싶다고한다.그래서시청자들이‘아,나처럼평범한사람도저런좋은일을하는구나.나도해보고싶다’는생각이들게끔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