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7.06.1722:30/수정:2007.06.1801:08
올해6월10일은유난히도소란스러웠다.현집권세력에참여하고있는이른바민주화세력이‘6·10항쟁20주년’이란정치적기획으로그날을기념했기때문이다.전날에는화려한전야제가있었다.당일에는대통령도참석한기념식이거창하게열렸다.그날의의미를되새기는학술행사도있었다.일부초등학교에서는‘6·10항쟁’에관한일기를써오라는숙제를냈다고한다.나도20년전그날서울역과시청사이의아스팔트위를분주하게움직였다.그렇지만‘항쟁’이란말이마음에걸린다.불의에대한정의의투쟁을‘항쟁’이라한다.그날의시위가과연정의와불의의싸움이었던가.
후대의역사가들은1980년대를어떻게쓸까.한국경제가오장육부를갖춘성체(成體)로자립한것은80년대의일이다.원조니차관이니돈을꾸기만하던나라가소득수준이높아져국내저축이투자를능가하게되었다.자립(自立)의가장중요한지표인무역흑자가발생한것은1986년부터이다.3저호황의덕분이라큰주목을받지못했지만,역사가의눈에는나라경제가적자로돌아선18세기중엽이래무려240여년만의쾌거로보인다.70년대에강행된중화학공업화의효과로자본집약적대기업이생겨나자80년대가되어그와생산·부품의수급관계를맺는중소기업이부쩍증가하였다.그래서나름의오장육부를갖추었다고한것이다.곳간이차면인심이후해진다고했던가.드디어1985년부터사상과학문의자유가베풀어졌다.그러자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등의저작이봇물처럼쏟아져나와대학가를휩쓸었다.
1987년6월10일은이같은선행(先行)하는역사를배제하고서는설명할수없는사건이다.산업화를통해나라를일으킨한세대가있었기에민주정치의다음세대가열릴수있었다.누가보아도무리였던70년대의중화학공업화가기적의성공을거둔것은경제에대한정치의영향을철저히배제할수있었기때문이다.이를위해70년대의유신체제는대통령을직접뽑을국민의권리를유보했다.그런데곳간이차서여유가생기자주권자국민이“이제그만하면됐으니우리의권리를돌려달라”고한것이그날에있었던학생과시민의대규모시위였다.이한열의고귀한희생이있었지만,시위는전반적으로질서정연하였으며,심각한폭력사태는회피되었다.집권세력은고민하였으며,드디어‘6·29선언’이라는건곤일척(乾坤一擲)의승부수를던졌다.대통령직선제로향한국민적여망을수용한것이다.
그해연말의대선에서어떤일이벌어졌던가.민주화세력을대표한양김씨가대통령을먼저하겠다는사욕(私慾)을억제하지못해분열하고말았다.결과는그들을지지한다수국민의패배였다.어찌해서그런후진국형정치사고(事故)가발생했던가.민주화세력의정신문화가후진적이었기때문이다.그들은민주주의의이름으로산업화세력을끊임없이비판해왔지만,자유·합리·책임·관용과같은민주주의의기본가치에서툴기는마찬가지였다.그들에게민주주의는권력에참여할기회를나누어갖자는불평에다름아니었다.다시말해그날의시위를‘항쟁’이라고부를만큼이른바민주화세력은특별히정의롭지않았다.
지난20년간한국의민주주의는제도와정신의양면에서크게성숙하였다.그것은어느특정의정치세력에게만공이돌아갈전리품이아니다.그것은대한민국의60년건국사가경제를건설한다음에정치를민주화시키는올바른수순을밟았기에가능했던역사의선물이다.그점에서산업화세력과민주화세력은하나이다.그점을상징하는것이1987년6월의6·10과6·29이다.큰마찰없이정치체제의전환을가능케했던이두사건은한묶음으로소중하다.그것은한국형명예혁명이었다.누가누구를배제하고역사의기억을독점하는폭력혁명이아니라너도나도역사의기억을공유하고일구어가는명예혁명이다.내년부터는이두날을묶어그런국민적축제로기렸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