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이발 가위 든 전직 파일럿
[반딧불]이발가위든전직파일럿 김경은기자larrisa0204@chosun.com
입력:2007.06.2801:49/수정:2007.06.2801:50
  • 27일오전서울강남구포이동푸른의원5층병실.사각사각,병실가득가위질소리가울려퍼졌다.허리까지오는하얀이발가운을입고,희끗희끗한머리를단정하게빗어넘긴‘이용사’는김영진(70·강남구대치동)할아버지.이병원환자이순묵(75)할아버지의머리카락을자르고있었다.김할아버지의가위놀림은보통이아니었다.어지럽게자란머리카락을짧게자르고,바리캉으로고르게다듬는손길이여느전문가못지않았다.
  • ▲김영진할아버지
  • 1937년부산에서태어난김할아버지는원래이용사출신이아니다.왕년에파일럿이었다.20살때공군에입대해24살때부터42살때까지19년동안F-86과F-5A전투기를조종했다.1979년대한항공에서스카우트제의를받은할아버지는중령으로예편한뒤곧바로대한항공에입사했다.1997년만60세로정년퇴직할때까지19년동안보잉747점보기를몰고미국,유럽,라틴아메리카등지를돌며파일럿으로일했다.

    그러다지난해3월치매를앓던어머니가부산에있는요양원에서세상을떠났다.파일럿으로일하느라평소어머니를자주뵙지못하는게늘아쉬웠던할아버지는불효를했다는생각에마음이아팠다.어머니연세의어른들께무엇을할수있을까고민하다가요양원치매노인들의머리가더부룩하게자라보기싫었던기억이떠올랐다.

    지난해12월10일부터미용학원에등록,이발기술을배워4개월만에일흔의나이에이·미용자격증을땄다.그리고지난2월5일서울종로종합사회복지관에서첫이발봉사를시작했다.그후1주일에4일이상씩강남,마포,종로,금천등에있는병원이나복지관을찾아다녔다.지난26일에는강남구대치동에있는베스티안화상전문병원을찾아화상환자19명의머리를다듬어줬다.5개월이채안되는기간에280시간이넘는봉사활동을했다.사회복지사김재숙(여·48)씨는“워낙정성을다해만지기때문에할아버지가오기만손꼽아기다리는분들이많다”고했다.

    아내최정자(65)씨는“봉사를받아야할나이에봉사를다니니건강이걱정”이라고말하지만할아버지는더활기가넘친다.“어머니께못다한효도를한다는마음으로즐겁게봉사하면서오히려사랑과에너지를얻거든요.저를필요로하는곳은어디든가서힘이되어드리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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