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牙山) -향토기행-
“당신의그림자만으로도온강산이빛납니다”
충무공이순신장군잠들어계신온천고을
아산,어떤곳인가

한반도에서손꼽히는큰만(灣)가운데하나인서해의아산만(牙山灣)은바다와호수의아름다움을동시에즐길수있는곳이다.조석간만의차가최대9.6m로한반도에서가장큰곳답게썰물때드러나는갯벌은눈길을거둘수없을정도로널따랗다.그래서바다를끼고나란히달리는해안도로와아산만안쪽의방조제(아산만·삽교천)를잇는도로는아산만이간직한아름다움을엿볼수있는멋진드라이브코스로손꼽혀왔다.여기에2000년아산만한가운데를가로지르는서해대교가건설되면서아산만은다양한모습의서해풍광을감상할수있는최고의드라이브대상지로떠올랐다.

▲영인산정상에서내려다본아산만전경.왼쪽으로는삽교천방조제,오른쪽으로는아산만방조제가보인다.

서해안고속도로를이용해아산으로가려면반드시아산호나삽교호를지나야한다.1973년아산만방조제를건설하면서생긴아산호는충청도와경기도사이의아산만에형성된인공호수다.충남서북부의당진·홍성·예산·온양·천안지역의수계인삽교천본류를막아생긴게삽교호라면,경기남부의수원·용인·화성·오산·안성·평택등의수계인안성천을가로막아생긴게바로아산호다.요즘경기도사람들은이호수를평택호(平澤湖)라따로부르고있다.아산호기념탑이서있는곳에새로정자를지어놓고‘평택호정’이라고하는걸보면이아산호에대한경기도민들의애정을읽을수있다.

▲아산만갯벌에서갯일을하고있는어부들뒤로서해대교가보인다.

한쪽옆구리에아산만을끼고돌면서바닷가풍경을훔쳐본다.갯바위에서굴을따는사람들,관능적(?)인몸매를지닌갯바닥에비스듬히누워있는빈배들….그런데이런바다풍광이아무리좋다해도아산만을지날때라면‘조개구이’를하는포장마차에마음을빼앗기지않으면오히려이상할것이다.참새가방앗간그냥지나갈순없는법.길손일행도남들처럼바다가보이는쪽에자리를잡고앉아조개구이를주문했다.포장마차안은가족과연인들이떠드는소리로왁자지껄해정작바닷소리를들을순없었지만,막바닷가에서따온듯한굴을비롯해싱싱한돌조개,민돌조개,맛,소라,키조개등은바다를끼고있는고을을돌아다니는즐거움을상기시켜주기에충분한별미다.

식탁옆에선사시대인들처럼‘패총’을만들어놓고흡족한미소를지으며포장마차를빠져나와삽교호와아산호를오가며저녁노을을기다리는일은정해진코스다.동해의화진포호,경포호등에선일출을곁들여야제맛이나듯,서해에선일몰을감상해야구색을갖추는게아닐까?

방조제엔휴일이면바다를구경하는사람들로가득하다.콘크리트방조제로올라서서삽교호와서해를번갈아바라본다.바다는썰물때라갯벌이다드러나있고,호수는꽁꽁얼어있다.아이들은바다를바라보며“야,갯벌이다”하며신나서소리를지른다.그러나,28년전의일을기억하는어른들은박정희대통령을생각하지않을수없을거다.

삽교천방조제건설에지대한관심을쏟았던박대통령은1979년10월26일삽교호준공식에참석해한글로‘삽교호’라는휘호까지썼다.그는방조제위를당당하게걸어가며국민들을향해손을흔들었지만,그게그의마지막공식행사였다.그날저녁,박대통령은궁정동만찬장에서김재규의총에맞아운명을달리하고말았던것이다.

삽교천방조제덕에내포의농경지도늘어났고,충남서북부일대의농지에물을공급하는일도원활해졌다.또서울~당진간육로거리도40km나단축시켰으니당시로선꽤나획기적인일이었다.조선시대에해로의중심에자리하고있다가,20세기들어육로가발달하면서조금씩소외되던아산이다시교통의요지로자리잡을수있는계기가되었던것이다.

두개의방조제에서일몰과조개구이를즐겼으면이젠아산의내륙으로들어갈차례다.우리현대인들은눈코뜰새없이바쁜일상을살아가면서도잠시짬을내서산속의절집을찾곤한다.아마도부처님계신대웅전들러삼배를올리기위해서라기보다는풍경소리들려오는절집의고즈넉한풍경을즐기기위해서일것이다.그렇다.굳이종교를따지지않더라도우리는절집에서자그마한행복을누릴수있는것이다.

그런데이게어디절집뿐일까?종소리들려오는교회는어떻고,찬송가울려퍼지는성당이면또어떤가.가서조용히쉴만한공간만있다면굳이예배를올리지않아도잠시만기웃거려도마음의평화를얻을수있을것이다.아산에는큰규모의절집은없다.연꽃좋은신창면의인취사나,들어가는진입로의솔밭이좋은송악면의봉곡사라는작은절집이있으나,요즘같은계절에는아무래도썰렁하다.그나마중세의사원처럼고즈넉하면서도종교적인분위기물씬풍기는성당이있다는것은다행이다.

아산만방조제를건너면국도가갈리는삼거리맞은편언덕에성당건물하나가눈길을끈다.바로우리나라에서가장아름다운성당중하나로꼽히는아산공세리성당이다.봄에는붉은영산홍이언덕을수놓고,여름이면상사화가눈길을끌고,가을이면오색의단풍….뿐만아니다.새하얀눈으로뒤덮인겨울설경도아름답다.그러나눈이내리지않았다해도실망할필요가전혀없다.300년수령의아름드리나목들빈가지너머로보이는성당건물은어디서보든지중세풍의유화를감상하는것만같다.이렇듯고즈넉한주변분위기는굳이미사에참석하지않아도마음의평안을얻게해준다.

▲성당둘레의산책길에는예수의수난을묵상할수있는조형물이세워져있다.

성당둘레로는수녀님이나신부님의산책코스로쓰일듯한한적한오솔길이마련되어있다.한바퀴도는데겨우5분도채안걸리는짧은거리지만,온갖수목으로둘러싸여있어참포근하게느껴지는매력이있다.여기엔예수의수난을묵상할수있는14처마다수난상징의조형물이조성되어있어종교적인분위기를한껏돋워준다.

이런덕에성당은영화나드라마촬영장소로도인기를끌고있다.드라마‘모래시계’를시작으로영화‘태극기휘날리며’‘불새’‘고스트맘마’,그리고이런저런뮤직비디오등에서의성당배경은이곳에서촬영했다고한다.가수안치환이성당의은행나무아래서썼다는노랫말도궁금하다.

원래이언덕은일찍이조선조때아산·서산·한산을비롯해멀리청주·문의·옥천·회인등충청도지방39개목·군·현에서거둬들인조세(租稅)를쌓아두던공세(貢稅)창고가있던곳으로서‘공진창’이처음명칭이다.1478년(성종9)모든제도가정비되면서충청도에서세금으로거둔곡식은모두이곳으로모았다가일정한시기에서울의창고로운송하도록하였는데,처음에는창고가없어밖에쌓아두다가1523년(중종18)에비로소80칸짜리창고를건축하였다.이곳에조세로바친쌀을모아두었다가수로500리길을따라선박으로옮겼다.

그러다고종때이제도가폐지되자1895년당시마을신자의집을임시로사용하여복음을전파하던파리외방선교회드비즈(에밀리오)신부가창고건물을헐고구본당과사제관건물을세웠다.1897년의일이다.지금도성당주변으로는조선시대성의흔적이680m정도희미하게남아있고,성당입구의인주농협앞에는6개의해운판관비가서있다.

[르포라이터민병준의향토기행]아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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