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한없이서글퍼진다.모처럼사람으로태어나면서왜하필이면賤出(천출)이라니…하염없이엎치락뒤치락하는가운데,문득「그렇지!」하는생각이언뜻머리를스쳐간다.「이길어빠진지천꾸러기밤을반허리를삭둑잘라내버릴수는없을까」하는생각이다.
밤을필요에따라길게도쓰고,짧게도쓸수만있다면그얼마나편리하랴?그끊어내버리는것이자꾸달라붙으려고하면어떻게할까.뚤뚤뭉쳐시궁창에처박아넣거나흐르는강물에띄워보내거나해야겠는데,그것도여간성가신일이아니잖아!
무엇에이용할수는없을까?그래!그렇지!내가왜그생각을진작못했지?늘턱없이짧게만느껴지는,임오신밤에다이을수만있다면그얼마나요긴하랴?그야말로截長補短(절장보단)으로안성맞춤이아니고무엇이랴.
그녀의눈은어둠속에서이글이글빛나기시작한다.
그래,그렇고말고!그럴양이면그끊어낸밤을소중하게간수해야지.어디다넣어둘까.
그렇지!이불속이제격이지.밤과이불은서로가한통속이니,그래바로그거야!그것도봄바람처럼다사롭고향기로운봄이불이제격이지.그래!봄이불!그래,그래!비취색「비단봄이불」
비록밤의절반이라고는하나,그또한길어빠진것을어떻게넣어야한다지?아,그렇지!노끈이나새끼를서리듯이,한발두발밞아가며서리서리서려서넣으면오붓하게들어갈뿐만아니라,헝클어질염려도없으리라.
그렇지,그렇지!그리하여봄기운이흠뻑배어들도록따뜻한아랫목에이불씌워묻어두면,달고도부드럽고향기롭게숙성이되겠지.임이오신밤이면,이를풀어내어그밤에다이어두고,느직한밤느긋하게세월네월즐긴다면그얼마나신나는밤이되랴?
그나저나풀어낼때는어떻게한다지?그야이불속으로넣을때의반대수순으로풀어내는것이순리지.「서리서리」넣었던것이니,한꺼번에왕창풀어낼것이아니라,차례차례순서대로한굽이두굽이「굽이굽이」풀려나오게될테니무슨걱정이랴?
그녀는마침내용수철처럼자리를박차고일어나불을켠다.부랴부랴먹을갈아,부산하게적기시작한다.
춘풍이불아래서리서리넣었다가
어른님오신날밤이거들랑(밤이어드란)굽이굽이펴리라.
이리하여이만고의絶唱(절창)은순식간에이땅에탄생하게되었던것이렷다.그녀는이어약간의字句(자구)수정을한다.「밤이거들랑」이어딘가거칠고거슬린다.모나는「ㄱ」초성과,수고롭게혀가꼽쳐지는「ㄹㄹ」의설측음때문이다.원활하게고쳐본다.「ㄱ」을탈락시키고,「ㄹㄹ」을「ㄹ」로바꾸고나니,한결부드러워졌다.「밤이어드란」.그래이거야!진정봄바람처럼부드럽고향기롭다.
그녀의詩想(시상)의배태에서출산까지의과정을잠시역추적해보았거니와,모든것은한발짝한발짝밟아가는순차가있게마련이다.앞내디디는발은이미내디딘발의탄력으로연속되게마련이며,잇달아차례차례로길은열려감을보게된다.천리길도한걸음으로부터라고했다.아무리奇想天外(기상천외)의상도발판없이는이루어질수없음을또한알게된다.
위와같이逆順(역순)으로詩文(시문)의시종경위를추적하면이해가빨라질뿐아니라,작자의作詩(작시)과정의현장에동참하는즐거움마저누리게되리라.
18세기정조때의詩書畵(시서화)三絶(삼절)로유명한紫霞(자하)申緯(신위)는「小樂府(소악부:시조40수를한역한것)」에서다음과같이읊었다.
燈明酒煖郞來夕曲曲鋪成折折長
긴긴겨울밤을반남짓잘라내어
봄바람이불아래서리어넣었다가
등밝히고술데우는임오신밤이어든
굽이굽이펴어내어느긋하게보내과저!
3장으로된시조를4구로된絶句(절구)형식의漢詩로옮기려니,「등밝히고술데우는」따위딴사연이첨가되는것은불가피하다치더라도,「서리서리」,「굽이굽이」와같은,물흐르듯부드러운疊語(첩어)에이르러서는쩔쩔맬수밖에없었음이역력하다.「서리서리」에해당하는한자첩어를발견하려고얼마나고민했을까만은끝내찾지못했으며,「굽이굽이」도기껏「曲曲(곡곡)」이고작이다.「곡곡」에서네번이나중첩되는「ㄱ」初終聲(초종성)의폐쇄음이얼마나그를미흡하게했으랴만은,달리도리가없었으리라.우리말의아름다움에새삼감탄했으리라!
여담이지만,잠이오지않을때「자야지」하면잠은점점멀어진다.「마음을비우라」는이도있지만쉬운일이아니다.비우고나면어느새엉뚱한것이차지해있고,쏟아버리고나면어느새딴것이채워져있다.마음의眞空(진공)을이루기어렵기에禪家(선가)에서는話頭(화두)를설정하여그것에서벗어나지않으려하듯,가장좋은방법은代入法(대입법),일명置換法(치환법)이다.
어느極寒(극한)의밤,뉘집부엌을빌려자다가너무추워아궁이로들어간김삿갓金炳淵(김병연)은그괴로움을이렇게표현했다.
地闊三千足不宣
하늘은구만리로높다지만
머리를들수없고
땅은삼천리로넓다는데
발을펼수없구나!
얼핏보기에간단해보이지만,여기에도對句法(대구법)·平仄法(평측법)등이정연히갖추어져있으니,글자한자한자마다서로반대되는뜻으로조직되어야하고,平聲(평성)과仄聲(측성)이서로어긋맞게정해진규칙대로排列(배열)되어야한다.위의漢詩는이규정에완벽하다.답답한아궁이속에서이를짜맞추고있는동안무슨괴로움이감히따고들수있었으랴?
기실杜甫(두보)의排悶裁詩(배민재시:고민을밀어내기위하여詩를지음)의수법이다.鄕愁病(향수병)에시달리면억지로라도詩를생각함으로써그고뇌를밀어내게된다는,그또한대입법이요,치환법을썼던것이다.그는「江亭(강정)」의3ㆍ4구에서이렇게읊었다.
고향은벼름벼름못돌아가니
시름밀어내자억지로시를짓네.
다른구절에는이런대목도있다.
草木變衰行劍外兵戈阻絶老江邊
낙양을한번떠나타향사천리
오랑캐쳐들어온지오륙년이라.
풀도이운검문산밖떠도는이몸
싸움에길막히어강변에늙네.
6·25전쟁때피란길떠돌면서,강변모래톱에여러세대의가족들이늘비하게露宿(노숙)하던기억에비추어보면,변방을떠돌며5~6년동안이나싸움에고향길이막히어돌아가지못한채,한인생이헛되이「강변에서늙고있다」는,그의장탄식을이해할수있으리라.
杜甫는詩를「억지로」지었다지만,진이는신들리듯靈感(영감)으로이루어냈다.그러고보면진이의시조는그모두가밤에이루어진것들이다.진이도잠이아니오는밤을詩로써극복,首首(수수)ㆍ片片(편편)만고의絶調(절조)들을탄생시켰으니,잠못이루는사람들이여!잠아니오거든詩를생각하시라!詩란시인이라는특허권자의전유물이아니다.간절한마음을숨김없이,꾸밈없이吐露(토로)한詠歎(영탄)이다.이야말로참다운詩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