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풍속화

조선의풍속화/김홍도


김홍도는29세때인1773년에는영조의어진과왕세자(뒤의정조)의초상을그리고,이듬해감목관의직책을받아사포서에서근무하였다.1781년(정조5)에는정조의어진익선관본을그릴때한종유,신한평등과함께동참화사로활약하였으며,뒤에찰방을제수받았다.이무렵부터명나라문인화가이유방의호를따라단원이라자호하였다.산수ㆍ도석ㆍ인물ㆍ풍속ㆍ화조등여러방면에걸쳐뛰어난재능을발휘하여당대부터이름을크게떨쳤다.
단원은우리풍속화의예술성을높였고고전적전형을완성한거장으로무엇을그려도우리그림답게그렸던작가였던까닭에온겨레의큰사랑을받아왔다.당대사람들의다양한생활장면을포착하는방법으로부터등장인물들의성격묘사에이르기까지조선인과그삶을표현하는양식적모범을완성하였다
인물묘사기법에있어서는성별,계층,연배,직업에걸맞도록복장,자세,표정등을밀도있게잡아내는데천부적재치를지녔다.50대이후사경풍속의평범한언덕,길,들녁,나무,잡풀묘사에서는김홍도의무르익은완숙미가두드러진다.자유자재로구사한독필의언덕묘사와잔붓을세워탄력있게밖에서안쪽으로쳐낸잔가지의나무표현이그러하다.이러한김홍도식화법은대상에대한객관적묘사의철저함으로부터비롯된것이었다.또한가장조선적인토속미넘치는풍속화를그린화가로서,<씨름>과<무동>처럼해학과익살이넘치는그림의작가로만인상지워져있지만,음악의대가였고,빼어난시인이었으며,또한일찍부터평판이높았던서예가이기도하였다.


씨름

씨름판이벌어졌다.누가이길까.앞쪽장사①의들배지기가제대로먹혔으니앞사람이승자다.뒷사람②의쩔쩔매는눈매와깊게주름잡힌양미간,그리고들린왼발과떠오르는오른발을보라,절망적이다…(그림의오른쪽위)씨름을구경하는잘생긴상투잡이③가저렇게누워있는것을보면씨름판은시작한지퍽오래되었다…다음선수는누굴까.옳거니,(그림의왼편위쪽)갓을벗어나란히겹쳐놓고신발을벗어놓은두장정④이심상치않다.내심긴장한듯무릎을세워두손을깍지낀채선수들의장단점을관찰하고있다….’

조선시대단원김홍도의풍속화‘씨름’을이렇게도꼼꼼히읽어낼수있을까.흥미롭고매력적인옛그림읽기가아닐수없다

무동(舞童)

<목동귀가>이그림은담백하게우린연한먹색을바탕으로시원하게부감한공간감,간일한필치의유연한농담구사,얼기설기하면서도분방한독필의사용등60대의무르익은원숙미와회화적깊이를뽐내고있다.현감에서파직된다음해에그린것으로사경풍속도에대한관심이나타나고있다.

<낚시>는옥순봉,사인암등단양풍경과산수인물,화조,영모20점으로꾸며진『병진년화첩』중의작품으로50대초반김홍도의자신감넘치는수묵감각을보여주는작품이다.

<만월대기로세연계도>은개성지방의은퇴한관리들이송악산의만월대에서잔치하는모습을담은것으로.전체화면에등장하고있는250여명의사람들을자세히살펴보면어린이,마부,그리고술에취해땅바닥에주저앉아있는취객,심지어는벙거지를쓰고밥빌러온거지의모습도보인다

섬세한필치와한적한분위기가50대이후김홍도의심상을유감없이말해주고있는<포의풍류도>에서는지필묵과파초,칼,술,책등과함께앉아비파를켜는선비의모습을그렸는데,마상청애도의말탄선비와동일인의얼굴로서김홍도의자화상으로추정되고있다.

자료출처:yah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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