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원
보물제326호인충무공이순신장검은크기가197.5cm이고무게는5.3kg나되는,상당한중장비입니다.검명은三尺誓天山河動色一揮掃蕩血染山河(삼척서천산하동색일휘소탕혈염산하-석자되는칼로하늘에맹세하니산과물이떨고,한번휘둘러쓸어버리니피가강산을물들인다).
검명외에도비천성무늬와칼을제작한장인의이름이적혀있습니다.여기적혀있는"갑오4월일초태귀련(太貴連)이무생작(李茂生作)"이라는문구로보아당시대표적인도검명장으로이름난태귀련(太貴連)과이무생(李茂生)이선조27년(1594)4월에진중에서만든것임을알수있습니다.
칼에는칼집에일본도처럼허리에차기위한장치가전혀없습니다.칼집에붙어있는줄은어깨에메는정도로보입니다.
이것은지금도그렇지만,대표적인일본도의손잡이양식입니다.이렇게일본도의영향을받아서만들어진거대한양손칼을조선식쌍수도라고합니다.
조선식쌍수도
조선식쌍수도(雙手刀)는무예도보통지에의해서"장검.용검.평검이라고도불리며,칼날의길이5척,(동호인1척),자루1척5촌.7척짜리도볼수있다."고정의되어있습니다.이순신장군검은7척가량하니까칼날의길이는5척이고자루는약2척정도입니다.그러니까이순신장군검은무예도보통지에비해서손잡이가약간큰셈이죠.
본래쌍수도는일본전국시대의"노타치(野太刀-쇼군해보신분들은아실겁니다.)"라는,거대한양손일본도에서유래한것입니다.왜구들이거대한양손칼을들고설치자명나라장수들이나조선의군인들이일본도를흉내내어큰칼을만들고,또수입하는과정에서영향을받아탄생한것이죠.이순신장군검을왜검으로분류하는경우는넓은의미의왜검(거대한양손곡도)을의미할때의말입니다.
그중에서조선의쌍수도는국방부국방군사연구소가발행한‘한국무기발달사’에서는이순신장검처럼긴손잡이가조선식쌍수도의특징이라고소개하고있습니다.위에올려놓은중국식쌍수도하고생긴건비슷하지만손잡이비율이다른것은그때문입니다.(보통칼날아래손잡이위에30cm정도의동호인이붙는데,동호인은옵션이기때문에이순신장군검에서는아주작습니다.)
그런데저번에전쟁기념관에서했던한국의전통무기전시회에서판매되었던도록이나전시회내용에도쌍수도는없습니다.심지어무예도보통지에도조선식쌍수도를따로그림그리지않은것으로보아,아마도그리많이쓰인듯하지는않습니다.하기야,이순신장군검도배위에서는도저히쓸수없는중장비니까요.역시(이순신장군을포함한)한국사람들은환도를더많이썼겠죠.무예도보통지에서는예도라는이름으로기록되어있습니다.(요도라고도합니다.)
그런데한국칼자체가워낙에짧고손잡이길이는고정되어있다보니,손잡이비율이큰것이한국도검의특징중하나가아닐까생각됩니다.태조어검사진을보면이검역시손잡이비율이큰편입니다.아마도이러한전통이쌍수도를만들때까지이어진것이아닐까싶습니다.
뿐만아니라쌍룡검과태조어검을비교해보면또하나재미있는것이있는데요,환도가몽골검의영향을받아서굽어있기야합니다만어디까지나그건삼국시대의직도에비교했을때의얘기고,일본도같은도검에비하면굽은것도아니라는겁니다.환도가크게굽기시작한것은임진왜란을전후해서,왜구나왜군이사용하는곡도의이점을알게된이후였죠.
쌍룡검과태조어검을보면,태조어검이가장직도에가깝고,쌍룡검중에서도아래쪽칼은곧은반면위쪽칼이더굽어있습니다.이순신장군이바다에떨어진왜장을끌어올려즉각베어버렸다는기록의그칼이저"약간더굽은칼"이아닌가생각됩니다.보통오른손에는항상자주쓰는병장기를쥐는법이고,쌍검을쓸때나남은한자루를뽑는법이니까요.보통은편곤이나활을쓰고임진왜란후에협도를좀쓰는게보통입니다만,이순신장군은해군이었으니이따금칼을잡는정도였겠죠.
유감스럽게도쌍룡검은지금우리나라에남아있지않습니다.1910년까지는그행방을찾을수있었던것으로보아아마도일제시대때일본으로반출된것이아닌가싶습니다.
Ps>사실저도보질못해서귀도와참도의특성에대해서잘알지못합니다.언제한번충렬사에가봐야겠네요.
국방일보연재기사<한국의군사문화재>
자료출처: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