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마라도 개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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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제주도가본토의유배지였다면마라도는제주도의유배지였다.
나는우리나라에서가장남쪽끝인이섬을찾아가기위해
모슬포에서배한척을전세냈다.
배가방파제를막벗어나려하자한중년할머니가나루에서서
고함을지르며팔을휘젓고있었다. 태워다달라는것같았다.
사공에게배를다시대게해서그할머니를배에
오르도록해주었다.
배가없어서이토록오랫동안눌러있었다면서뱃전에엎드려
의미모를큰절을하는것이었다.
들을수가있었다.
사람을미리사귀어본다는것은그럴듯한수단의한방법이었다.
배가마라도앞가파도를지날때이할머니는무릎을곧추
앉아서는두손을합장하고자꾸비비고있었다.
가파도사이에놓여있어서해류가몹시심했다.
항상일기때문에숱한섬사람들이원귀(寃鬼)가되어
돌아왔노라고사공이귀뜸해주기도했다.
그렇기에배가가파도의격랑을가로지를때그처럼
주문을외우는것은이섬사람들에게있어서조금도
이상할것이없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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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는또헤아려보곤하는것이었다.
나는왜그러는가싶어서들여다보았더니그것은
어린이들노오트였다.
좀질이좋아보이는것몇권,그만못한것몇몇권을
되풀이세어보는것이었다.
할매는고개를가로흔든다.
그의슬하에는스물다섯명의손자가있었다.
이노우트를손자들에게줄것들인데본손자에게는
좋은것을외손자에게는그만못한놈으로,
그리고아들손자에게는두권을,딸손자에게는한권씩을
주려니까이할머니의노쇠한머리로는셈하기가
무척어려울수밖에—-
이끝섬에서내가만나고자하는분이바로이할머니의
어머니였슴을서로알고놀란것은그후의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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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하고있음을알고야비로소노우트를사는데도그토록골치를
앓아야하는이섬의생리를낌새챌수가있었다.
어린효녀의뱃길천리(千里).
사투리가심해서가아니라그의말을한마디도알아들을
수가없었다.
손을모아비는모습이나무릎을곧추세워곡(哭)하는듯한
모습을곧잘짓는것은수다스러운세상과등지고대자연에
평생을꾸준히,그리고패배하면서도끈기있게참아온
그러한인간만이지을수있는자세인지도모른다.
우리나라가장남쪽끝그섬에서도가장남쪽외딴집에
사는홀할멈이그러했다.
그허술한두칸집앞마당에서는그저하늘과바다밖에는
아무것도보이지를않는다.
가로세로의지름이단지1킬로미터남짓한푸른둔덕을
십미터안팎의험한화산벽이둘러있어나루터하나
만들곳이없는섬이마라도이다.
그러한섬에외딴집한채자랑거리라면
김해김씨라는밖에없다는아흔네살의김성오[金成五]
할매가살고있다.
이할매는이섬의우상적인존재요,주물(呪物)적인존재였다.
마을사람들은이할멈의기도없이는미역이잘자라지않는
것으로믿고있었다.
그렇기에이할멈도나들이를않고또말도안하며막막
남쪽바다를바라본채손을모아풍조(風潮)만을비는것으로
십여년을살아왔다.
허리춤없는삼베노슬리브의상의와역시허리를끈으로
옭아맨삼베슬랙스를입고있었다.
손수창안한노출취미의디자인이다.
그리고따가운남국의햇살을막기위한해초의갓도
손수만든것이라했다.
닭털로군데군데데코레이션을한이갓은이국(異國)의
한묘족의추장이쓰고있는모자를연상할만큼너무나도
그것과흡사했다.
그녀의지팡이에도닭털이묶여있어서마을어린이들은
그것을가리켜‘마술지팡이’라고놀렸다.
이할매의살갗을처음보는사람이라면사람의살갗이
저럴수가있을까,할만큼놀랄것이다.
어쩌면그것은구십평생바다속의물질[海女業]로인해서
살이깎이고햇볕에탄탓일것이다.
집어올리면바스락소리를내며들떠진다.
여기는이는적고다만우화등선(羽化登仙)하기위한과정으로
받아드리는이가많았다.
바로이할매의일생은마라도의개척사였다.
신탁(神託)받은작은땅.
한말(韓末)만해도마라도는제주죄인의감옥섬이기에
금도(禁島)라불렸다.-금섬이라고도불렸다.-
유배당한제주도의죄인들이화전을일구어먹다가
죽어가곤했던무인도였다.
할매의아버지가죽은것은할매가열살때였다.
두어린동생을데리고임종을지켜보던소녀는
밭한다락없이남겨놓지못하고죽는것을원통해하던
아버지의말을잊을수가없었다.
한줌의재가묻힐땅마저없으니바다바람에날려버리라는
아버지의말은어린소녀의가슴팍을몹시도쓰리게했다.
그리고그때가난한사람들이흔히뇌까리던말-차라리금도에
묻힐걸-,아버지는이한마디를끝으로남기고한많던
세상을영원히떠나고말았다.
그후이소녀는금도에대해서수소문을하고다녔다.
정말금도에다유해를묻어야겠다고생각했기때문이었다.
그러나어린소녀로서는너무도엄청난일이었다.
나어린소녀가낙배를저어가파도의거센물길백리를
간다는것은상상조차어려운일이었다.
드디어이소녀는낙배에다어린두동생을태우고아버지의
유해항아리를실었다.
그리고태왁[물질바가지]과잡곡씨앗몇줌,농기구몇자루,
부싯돌이렇게싣고이틀동안밤낮없이배를저었다.
기진하여노를떨어뜨리면물질옷으로갈아입고서뛰어들어
건져왔다.
바다파도가거세서난파사고가많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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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에도착한이아기들의낙배는닿을곳을찾지못해
섬둘레를세차례나돌았다.
음침한기둥바위에서는박쥐떼가날아들어
어린동생들을놀라게했다.
발디딤터를만들어가며섬위로기어올라갔다.
나무들이칙칙하게들어선원시림속을이어린이셋이
죄인들이살았을화전을찾아헤매는데꼬박사흘이걸렸다.
할매는또서너번쯤팔뚝굵기의구렁이에게쫓기어
도망치던그때일을기억하고있다면서몸서리를쳤다. 죄인들이무덤너댓개와서마지기남짓한땅이키를넘는
잡초에묻혀있었다.
이세어린이는이곳에움막을지었다.
나무를꺾어얹고는나무껍질로묶고또풀을베어엮어서
지붕을이었다. 부싯돌을쳐서불을일구어숲에다질러서땅을넓혔으며
동생들은산마꽃을찾아다니며마를캤다.
때로는물질해서따온미역을삶고전복을구어먹으며
한두달을살기도했다.
이세어린들이결국마라도의시조가된것이다.
[이글에오해의소지가있다.끝까지읽어보시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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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다시보는인간의모습
세어린이가정착한지십년쯤된어느비바람치던날
남쪽에서돛배하나가표류해왔다.
그배는바위벼랑에사뭇부딪혀깨지기시작했다.
그속에는두어부가타고있었는데너무풍랑에
시달렸음인지실신하고있었다. 아가씨는나무껍질로꼰굵은줄을그들에게던져주어
바위벼랑을오르게하였다.
도리섬[鳥島]어부였다.
미공군과해군의폭격시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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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인이두어부는이아가씨가지어주는밥을먹고
그들부자(父子)는배를만들어야했기에그만한시간이필요했다.
그때그들부자가떠나가던날일을이할매는생생히
기억하고있다.
물질해서따온미역과마한꾸러미를그들배에실어주었을때
아들어부가할매의치마깃을잡고마냥울었던일이지금까지도잊혀지지않는다고했다.
그리워지듯남자도
그때두동생들이그아버지어부를붙들고배에
타지못하도록끌어대던일도눈에선하다고했다.
그런지3년인가5년인가지난후였다.
서너명의어부가큰범선을몰고왔다.
이들이섬에올라서자아우들은해적인줄알고훔쳐갈것이
없다면서울어댔다.
왜냐하면짐을실어갈암수소두마리를몰고왔기때문이다.
한데그중한어부가몰라보겠느냐고웃으며다가왔다.
전에할매가구해준바로그아들어부였다.
빨갛던동안[童顔]이어느덧굴레수염이텁수룩한털보가
되었으니얼른알아볼길이없었던것이다.
이장성한아들어부는아버지가돌아가셨기에같이
올수가없었다면서그때이섬을떠날때꼭은혜를갚기
마음먹었다고말했다.
그들마라도살이에서뭣보다도꼭있어야할것이농경용
소임을알고깨닫고소두마리를값을버는데그렇게
많은세월이필요했던거라고말했다.
소가있으면서부터할매의일은한결수월했고또밭도
한결쉽게일굴수가있었다.
방아를찧게되었다. 지금도이할매가만들었다는멧돌방아우리나라에서는
마지막남은그방아가나루터의둔덕에아직도남아있었다.
할매는평생이섬을한번도떠난적이없었다.
물론한일합방도몰랐고해방도몰랐다.
호별세도물지않았고선거한번해본적도없다.
섬의시조요우상인이할매는마라도의명판관이기도했다.
이섬대로지켜내린향약[鄕約]이란관습법이있으며
이법에저촉되면원로들로구성된재판이벌어진다.
최고결정권자는마라의대법원장인할매에게있었다.
여왕이었던것이다.
그런평탄한90평생에이섬에다퍼뜨린본손외손이
이새로운취락을만들며살아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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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이저서에실린이재수의난과함께아주인상에남는
제주도글이었다.
내가얻은정보로는조선조중엽에이섬에처음으로
사람들이들어와서살았다는기록도있고또다른기록에
의하면1873년세가구가이섬으로이주했다는기록도
있다.
적어도내가아는한이규태선생이60년대초에마라도에
직접방문해서쓴기사는근대마라도개척에대한유일한
상세기록인듯하다.
할매는이미작고하여마라도의묘소에잠들어있다.
그분이제주도를떠나서동생들을데리고당시금도,
또는금섬이라고불리던마라도로이주할때를추측해보니
1880년대였다.
마라도는총넓이가9만평되는작은섬이다.
마라도리(里)사무소에서근무하는분의말에의하면
마라도에마흔가호가상주하고있는데원래부터
사는분은세가호라고했다.
[육지와달리제주도에는리단위도사무실이있다.
제주여행자는특정목적지의리사무실을접촉하면
도움을받을수가있다.]
마라도김성오할매가소녀때마라도에상륙하고자섬을
세바퀴나돌았다는데그런비경의마라도는지금하루에도
여덟번이나유람선이기항하는유명관광지가되었다.
마라도는전체모습이사발모습이고
주변은높은벼랑으로되어있다.
할매가상륙하기가무척어려웠다는말이일리가있는말이다.
할매가이작은섬에서전에살았던분들이일군경작지를
찾아내는데며칠을걸렸을만큼숲이우거졌었지만지금은
섬의나무는다없어지고골프장과같이툭트인초원이되었다.
나무가없는섬은도민들의공동목장으로서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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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만한구렁이들이할매를겁을주었다지만
소수로발견된다.지네도많다.
이섬전체가한신원불명의여성이름으로등기되었다가
지금은분할해서개인들에게불하도하고일부는국유지로
되었다는정보를귀뜸해주었다.
이분이혹시김성오할머니와무슨연관이있는지모르겠다.
[방빛남씨의부친은마라도최초의교회목사님이었다.]
등대는물론기본으로있고작은미니학교와출장소와
중국집들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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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짜장면집이라불리는중국집은메스컴을타고전국적으로
나는제주도의아는분들은물론마라도에사시는분들에게
혹시근세에마라도를개척한김성오할매룰아는사람이
있는지알아보았지만아는사람이거의없었다.
40여전까지생존해있던마라도의개조(開祖)김성오할매가
쉽게망각된것이사실조금섭섭했다.
그런실망의탐색을하다가리사무소백정혜씨가소개해준
그분의시어머니변춘옥할머니를접촉할수있었던것은
큰수확이었다.
나이80이넘으셨지만변춘옥할머니는김성오할매를
생생하게기억하고있었댜.
그녀는몇가지를제외하고이규태선생의글의내용이상당히
신뢰성이높은것을증명해주었다.
먼저김성오할매가마라도에어린나이로들어와서
마라도를개척한사실은맞다는것을말해주었다.
먼저이규태선생의글을잘못해석해서김성오할머니와
동생들사이에근친결혼을해서마라도의씨를퍼뜨린것이
아닌가하는오해도전혀근거가없다고잘라부정했다.
김성오할매에게는젊은시절부터남편이었던나씨라는
남편이있었다.
오히려오빠가있지않았던가하고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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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의교통조차도불편했을만큼외따른섬이었던관계로
좁은섬안에서가까운인척,즉사촌사이에서도
혼인이이루어져앞서이규태선생이쓴대로마라도
사람전체가모두친척인혈연촌락이형성되었던것이다.
지금은자손인원주민의대다수가섬을떠났다.
변춘옥할머니는이규태선생의글대로할매가섬의
실질적인도주(島主)였다고증언했다.
모든섬사람들이승복하고따랐다고했다.
그녀의권위는그정도의파워를갖게했을것이다.
지금마라도는관광섬제주도에서도인기관광지로서
날로발전해가고있다.
이섬의개척자인김성오할머니도그곳에잠들어있고
이할머니를증언해줄만한이규태선생의기록도있고
그녀의공적을증언해줄변춘옥할머니도아직생존해있다.
그리고개척의공적은조촐한비석이라도하나세워서기록에
남겨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