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晉州城)에서

지난일요일(11.22)에동창자녀의결혼식참석차진주를방문하게되었다.

이른아침부터바쁘게서둘렀는지라진주에도착하니오전열한시경이었는데예식시간까지는두시간넘게
여유가있어서진주성을답사하기로했다.진주에들리면꼭가보는,촉석루가자리하고있는진주성은수도

없이가보았지만진주시의중앙에자리하고있어접근성이좋아서쉽게들릴수있으므로또가게된다.

晉州城하면보통촉석루와논개(論介)를떠올리지만사실은임진왜란때왜적과의싸움에서대승을거둔

‘진주대첩’이역사적가치를지니고있는진주성의본모습임을알아야할것같다.

진주교에서바라본진주성

김시민장군과진주성

사적제118호인진주성은진주의상징이다.둘레1,320미터인이성에는진주의역사와긍지가살아숨쉬고있다.

임진왜란때왜적에게최초로대대적승리를거둔곳이바로이곳진주성이다.그리고그주역이충무공김시민장군이었다.
이때왜적을크게물리친진주성대첩은충무공의한산대첩,권율장군의행주대첩으로더불어임진왜란3대첩이라고한다.‘대첩(大捷)’은크게이긴전투를일컫는것이다.

임진왜란3대첩지의하나인진주성과김시민장군.

청사에길이남을역사를이루었으나,안타깝게도현재는역사의뒤안길로사라진느낌이없지않다.진주의긍지를태동시킨진주성대첩의주역들이‘의기논개’의명성에밀려흔적조차찾기힘든것이현실이다.

사실진주성입구에서제일먼저반기는것은‘논개시비’이다.또진주성문을지나곧장촉석루에들어서도의기사,의암등역시논개흔적뿐이다.이러다보니진주성을찾은사람들은논개만보고돌아간다.그리고진주성하면너나없이‘촉석루’‘논개’만을떠올린다.

한산도에가서이충무공을생각하지않고,행주산성에가서권율장군을떠올리지않고오는사람은없을것이다.그런데진주에와서는김시민장군을모르고그냥지나치는사람이많은것이다.

논개영정

김시민장군이진주성과인연을맺은것은1591년진주판관으로부임하고부터이다.부임한지1년후1592년(선조25년)4월에임진왜란이발발했다.당시진주목사이경이병으로세상을떠나자,초유사김성일의명에따라진주목사대행에임명된장군은병기를수리하고성지를구축하는한편수성군을모집하여진주성을사수하고자했다.장군은모집된수성군에게맹훈련을시키고병기와자재를정비하고양곡을비치하였다.진주성은지리적으로호남에이르는길목에위치하고있어만약이곳이무너지면왜적은바로호남지역을휩쓸게되는상항이었다.

또한장군은의병장김면의요청에따라거창으로나가왜적을크게무찔러이공로로1592년7월26일진주목사에정식으로임명되었다.9월에는진해에서왜군장수평소태를생포하여의주의조정에보내경상우병사에임명되었으며,고성,창원까지진격하여왜적을무찌르는등큰공을세웠다.

이때왜적은김해,고성,창원등경상도남부지역에서연패하자경상우도의조선군주력부대가진주성에주둔하고있다고판단,전세를만회하기위해이를함락시킨다는계획을세우고있었다.왜적은진주성을공격하기위해등원랑,평조신등을주축으로부산,동래,김해지역에포진하고있던정예병3만여명을동원하여1592년10월5일진주성공격을감행하게된다.

진주성에는김시민목사가거느린군사3,700명과곤양군수이광악의100명등도합3,800명의군사가있었는데,이들대부분은정예병이라기보다는새로모집한장정들이었다.그러나김시민장군은진주성민들의필사적인단결과곽재우·최강·이달등각처의병들의열렬한성원에고무되어죽기를각오하고진주성을사수키로결심한후화살하나탄환한발이라도낭비하지말것을지시하는등만반의전투준비를갖추었다.

10월5일아침부터왜군은신식무기인조총을주무기로3개부대로나누어공격을감행하였다.김시민장군은적군의화력을최대한소모시키고자일정한거리에올때까지대적하지않고성안에아무도없는것처럼위장하는한편,직접성내를순회하면서임전태세를점검하고음식을제공하는자신도병사와같이동고동락하면서솔선수범하였다.이같은장군의헌신적노력에감복한군사들은혼연일체가되어죽기를무릎쓰고싸우게되었다.

비록수적으로열세였지만김시민장군을중심으로진주의민관군은혼연일체가되어비격진천뢰등무기와화살을쏘아왜군의공격을막았고,백성들은돌을던지거나물을끼얹어적을물리쳤다.왜적의공격5일동안계속되었으며,이때마다진주의민관군은철통같은대응으로왜적을물리쳤다.

김시민장군은전투가거의끝나가던무렵인10월9일전투지역을순시하던중왜병의저격에의해이마에총탄을맞고쓰러져치료받다가며칠후39세의아까운나이로세상을떠났다.

진주대첩은왜적의호남지역침공을좌절시켜국내최대의곡창지대인호남지방을온전히보전하는데기여하여결국은임란을승리로이끄는견인차역할을했다.

남강변에자리한진주문화원

임진왜란당시논개가왜장을끌어안고투신했다는의암

촉석루뒤편루로오르는계단신발을벗고들어갈수있다

논개사당인의기사

가을에열리는개천예술제행사시등축제가열리는남강,황포돛배가상시로떠있다.두남녀는모형임

남강대교인진주교.상판가장자리에달려있는것은논개의가락지를형상화한것임

진주성안에자리한청계서원후원,앞쪽으로국립진주박물관이자리하고있음

서원옆의잔디위에내려앉은샛노란은행닢,남녘이어서그런지은행닢이다지지않았다

반대편강나루에서바라본진주성과촉석루,강물은아직도강낭콩처럼맑고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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