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반민족행위자였습니다

[ESSAY]저도반민족행위자였습니다
  • 우수용경남진주시이현동
  • 조선일보입력:2010.01.0623:01

    우수용경남진주시이현동

    "우리세대는태어나면서부터일본국민이었다.
    그것도병역의무도참정권도없는2등국민이었다.
    우리들이전쟁터에나가죽는대가로남은동족들의지위가향상되리라믿었다."

    저는일정(日政)때조선인징병1기해당자로금년에86세가됩니다.우리세대의해는이미저물었습니다.살아있는사람은그리많지않을겁니다.그나마앞으로얼마안있어모두사라질겁니다.그렇게되면우리들의세대는영원히침묵하게될것입니다.그래서꼭해두고싶은말을지금부터하겠습니다.

    일본자살특공대가미카제(神風)대원이었던경남사천시출신탁경현씨가1945년5월11일비행기를몰고오키나와섬에정박중이던미군함대를향해돌진,자폭하여생을마감했던바로그날,저는당시대전에있었던일본군제224부대병영안에서징집된육군일등병으로폭약상자를등에메고적군의전차밑으로뛰어들어자폭하는훈련을열심히하고있었습니다.그때만일전쟁이몇달만더끌었더라면저는아마어느전선엔가보내져서훈련받은그대로인간지뢰가되어적군의전차밑으로뛰어들어죽었을것입니다.그랬더라면저와탁경현씨는지금똑같이반민족행위자라는말을듣고있었을것입니다.

    그런데탁경현씨가죽은후석달만에우리나라는해방이되었습니다.그해방은우리가싸워서얻은성과가아니고누구도예측하지못한상황의돌변에의하여저절로주어진요행이었습니다.어쨌든그해방덕분으로그때까지살아남았던저는해방된조국으로돌아와6·25전쟁때경찰전투요원으로참전하였습니다.지금은국가유공자로대우받으면서안락하게살고있습니다.반면그때죽었던탁경현씨는일본을위하여목숨을버린반민족행위자라하여,외로운넋이되어고향으로돌아오는것조차같은동족들에의하여거부당하고있습니다.이것은너무나불공평합니다.살아서국가유공자행세를하고있는제가죄스럽고부끄럽습니다.

    탁경현씨와저는나이도그당시20대전반으로같은세대였습니다.저희들세대는태어나면서부터일본국민이었습니다.그것도무기력하게나라를잃은선대들의원죄를물려받아병역의무가없는대신참정권이없어일본인들로부터온갖차별을받는열등한2등국민이었습니다.그서러움은젖먹이나이때부터일본에서자라난저에게는더욱직접적으로피부에와닿았습니다.

    같은동족어른들사이에서’조선독립’이라는속삭임이간혹어렴풋이들리긴했지만,그것은시궁창에서살고있는소녀가꿈속에서신데렐라를보는것만큼이나현실성이없었습니다.그러한가운데태평양전쟁이시작되었고,이어서조선인에게도병역의무가주어져저자신이징집1기에해당되게되었습니다.사실이지두려웠습니다.죽는게무서웠습니다.

    그런데그무렵부터저희들을대하는일본인들의태도에변화가보이기시작했습니다.전에는바로대놓고’조센진(朝鮮人)’하고민족을비하(卑下)하여부르던그들이그말을쓰는것을스스로금기시하게되고,대신지역을말하는’한토진(半島人)’이라고부르기시작했습니다.저에게"너희들에게도곧참정권이주어져서우리들과같은권리행사를하게될것"이라고말하는일본인친구가늘어났습니다.

    저는저희들에게주어진병역의무를긍정적으로생각하게되었습니다.즉우리들이전쟁터에나가서죽는대가로뒤에남은동족들의지위가크게향상되리라는것을믿게된것입니다.저에게는징집영장이바로오지않고본적지면사무소에와서영장을받아입대하라는면장으로부터의전보가전달되었습니다.그래서저는난생처음보는고향면을찾아가하룻밤을자고이튿날국민학교교정에서열린환송행사에다른입대장정들과함께참석하였습니다.많은고향어른들이저희들의장도를격려해주셨고,고향후배인학생들이손에손에깃발을들고흔들면서환송을해주었습니다.저희들은자랑스러운마음으로당당하게입대하였습니다.기왕에죽을바엔일본인병사들보다더용감하게죽어서조선젊은이의기개를보여주려고하였습니다.어리석었을지는몰라도사악하지는않았습니다.이상이반민족행위자인저의변명의전부입니다.

    고향에서제가보았던환송행사가사실은일본의강압에의해이루어진거짓행사였다는말을귀에못이박이도록들었습니다.그런데그게모두내탓은아니고남탓이었을까요?우리들가운데어느한사람도나라잃은선대들의원죄로부터자유로울수없습니다.그사실을겸허하게받아들여서이제는구차스러운변명은하지않았으면합니다.

    다만,지금반민족행위시비에휘말리고있는세대의대부분이어떻게되어서이든간에잃었던나라를되찾고6·25전쟁에서나라를지켜냈고오늘의대한민국위상을이루는데기초를닦은세대이기도하다는것만은기억해주십시오.

    이번에만들어진’친일인명사전’인가에는일본군에복무했던사람들가운데일정계급이상의장교는넣고,그이하의저와같은사병들은개처럼강제로끌려갔던보잘것없는희생자라해서너그럽게용서하여이름을뺐다더군요.그렇다면그명부에등재된사람들은자신의행동에대해책임질능력이있는완전한인격을갖추었고,이름이빠진저희들은자신의행동에대해책임질능력조차없는책임무능력자란말입니까?이건우리세대전체에대한모독입니다.넣으려면계급의고하를막론하고다넣어야했습니다.군인은장교건사병이건넓은의미에서모두가병사입니다.임무를위해내던지는목숨의무게는모두같으니까요.

    계급고하를막론하고당시의일본군인이었던자를모두반민족행위자명부에넣었더라면우리들의마음은차라리편했을지도모릅니다.그런면죄부뒤에숨고싶지않습니다.

    마지막으로한가지만덧붙이겠습니다.6·25전쟁중에다부동전투를승리로이끌어나라를백척간두에서지켜낸자랑스러운국민적영웅을일본군하급장교였다는이유로반민족행위자로규정지은것은마치그가한때로마의관리였다는전력을들어저위대한성자인바울을악마로몰아세우는것과다른것입니까?지금에와서과거의역사를심판하여단죄하려는사람들은좀더폭넓고열린마음으로사리를판단하였으면하는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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