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하나와분필이전부…비바람몰아치면옷젖어
짚·풀로덮고가마니깔고나중에임시학교지어
내고향은지리산자락에있는
두달정도굴속생활을하는데외할아버지가찾아와"인민군이어린아이들과노인들은잡아가지않으니아이들은집으로오라"고했다.아버지와어머니,16살누나는굴속에남고형과나만집으로돌아왔다.집에와서도우리는마당에2평남짓한방공호를만들어무슨소리만나면무조건들어갔다.
시간이흐르면서나와또래친구들은그런상황에익숙해졌다.인민군도빨치산도별로무섭지않았다.총과실탄·수류탄등무기를주워서모으는것을재밌다고생각했다.폭격이나총소리가나면일단숨었다가기관총소리가많이났던곳에잽싸게달려가기관총탄피와실탄연결고리를주웠다.비행기폭격소리에도익숙해졌고,뛰고엎드리고지형·지물을이용해숨는요령도군인못지않게터득해갔다.총소리만듣고도아군인지,적군인지알수있을정도였다.
동네가인민군치하에놓인지3개월정도흐른어느날온동네가시끌시끌해졌다.인민군이후퇴하고경찰이다시돌아왔다고했다.한동안보이지않던동네어른들과형들이다시활보하기시작했다.우리는학교도다시다니게됐다.하지만학교건물은이미불타버리고없었다.아이들은잿더미속에서타다남은못과유리창이녹아구슬처럼된유리알을주워서’못치기’와’구슬치기’를하면서놀았다.
학교선생님들까지동네로돌아오고,학교수업을다시시작한다고했다.학교가불에타버린상황에서동네에서부자(富者)였던몇몇어른들이자신들의집을흔쾌히교실로제공했다.우리는학년별로공부할장소를나눴다.학년이낮을수록좋은환경에서공부할수있었다.1학년은박부잣집대청마루,2학년은권부잣집대청마루,3학년은정부잣집대청마루,6학년은북단하천둑에있는정자나무밑에서공부를했다.우리는이교실을’유랑교실(流浪敎室)’이라고불렀다.유랑교실에는칠판하나와선생님이가져온분필이전부였다.여름에비바람이몰아치면바깥쪽에앉은아이들은옷이젖었다.겨울철에는차가운마룻바닥때문에엉덩이가시려참을수가없을정도였다.쉬는시간엔햇볕이잘드는양지쪽에벽을등지고옹기종기모여서손을비비며몸을녹였다.밤이면같은반아이들끼리모여등잔불밑에서같이숙제를하기도했다.
- ▲1953년3월에찍은단계국민학교3학년수료기념사진.가운데둥근원안에있는소년이노주원씨,사진오른쪽화살표가가리키는곳이초가지붕과흙벽으로된가교사(假校舍)의모습./노주원씨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