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수군의 돌격선 거북선

거북선이먼저돌진하고판옥선이뒤따라진격하여연이어지자·현자총통을쏘고,포환과화살과돌을빗발치듯우박퍼붓듯하면적의사기가쉽게꺾이어물에빠져죽기에바쁘니이것이해전의쉬운점입니다.”<이순신,조진수륙전사장(條陳水陸戰事狀),1593년9월>

이순신장군이임진왜란개전이듬해인1593년조정에보낸보고서의한구절이다.이순신장군이이장계에서자신있게언급했듯이거북선(龜船)과판옥선은임진왜란해전에서조선수군의승리를뒷받침한가장강력한물적토대중하나였다.

이순신장군의원형거북선과유사하다는기록이남아있는이충무공전서의통제영거북선그림

1979년에건조를시작해1980년에제작완료한해군사관학교의1대1크기복원거북선

거북선–갑판위에덮개를씌운특수한구조의군함

거북선은지붕혹은덮개역할을하는개판(蓋版)이갑판의윗부분을덮고있는특수한구조를가진군함이다.그덕택에갑판에근무하는승조원들과전투요원들이적의공격에직접노출되지않고내부에서안전하게자신의임무를수행할수있었다.일본군들은해전에서도적의배로뛰어들어칼과창으로승부를가리는것을선호했다.조선의입장에서는왜군들이조선의배로뛰어들어단병접전을시도하지못하게막고,조선의장기인활쏘기와화약무기사격으로적을제압할수있다면이상적이었다.그같은필요에따라기본갑판위에갑판을한층더높인군함이판옥선이고,갑판위에아예덮개를씌운군함이거북선이다.

거북선은두꺼운개판과개판위에설치한뾰족한철침으로적이뛰어드는것을원천봉쇄할수있고,적의화살공격은물론이고조총사격도어느정도막아낼수있었다.조선수군의주력군함이었던판옥선은1층갑판에있는인원들만보호할수있고2층상장갑판의전투요원은노출된공간에서전투할수밖에없었다.하지만거북선은배에탄모든사람을실내에보호할수있는것이특징이었다.

조총탄환에대한든든한방호력

거북선은기본적으로재질이단단한나무를두껍게사용해배를만드는한선(韓船)의DNA를그대로계승한군함이었다.1795년에편찬된[이충무공전서]는거북선의외판두께가4치(약12~13cm)라고기록하고있다.일본연구자들이구경9mm급조총의관통력을시험한결과를보면30m에서두께4.8cm의전나무판자를관통했지만,거리50m에서는두께4.8cm의전나무판자를관통하지못했다.조선시대군함은전나무보다더단단한소나무를써서주로만들었다.결국조총으로50m이상거리에서두께12~13cm의거북선외판을관통하는것은거의불가능했다고할수있다.

조선시대군함에서방패판등강도가필요한부분은소나무보다더단단한참나무를이용했으므로주요부위의방호력은더욱강력했을개연성이높다.임진왜란이후조선후기에걸쳐우리나라에서널리사용한조총은구경13~16mm급이많았는데,김육(1580~1658)은[잠곡유고]에서“대포는비록3척(약90cm)두께의방패라도쉽게뚫으나(조총의)철환은1촌(약3cm)도뚫지못한다”고기록한것도참조가된다.

물론일본에서구경9mm급이상의조총도널리사용했지만위와같은여러기록을본다면어지간한조총으로는50m이상거리에서거북선의외판을관통하기는현실적으로어렵다고할수있다.연희전문학교3대교장이기도했던H.H.언더우드(HoraceHortonUnderwood,1890~1951)도1933년영국왕립아시아학회조선분과지에발표한그의논문(KoreaBoatsandships)에서“거북선개판의두꺼운나무판자만으로도충분히일본군의조총사격은막을수있었다”고설명했다.

최선봉돌격선역할을수행한다

거북선은판옥선과달리갑판윗부분까지완전히덮개를씌우고있었으므로방호력측면에서훨씬강력했다.덮개를씌웠을때의또다른장점은적이아군의움직임을전혀볼수없다는점이었다.다시말해적이아군에게조준사격을하려해도그것조차쉽지않았다.이순신은조정에승전보고를올리면서이같은거북선의특성에대해강조한다.

“신이일찍이왜적들의침입이있을것을염려하여별도로거북선을만들었는데,앞에는용머리를붙여그입으로대포를쏘게하고,등에는쇠못을꽂았으며안에서는능히밖을내다볼수있어도밖에서는안을들여다볼수없게하여비록적선수백척속에라도쉽게돌입하여포를쏘게되어있으므로이번출전때에돌격장이그것을타고나왔습니다.”<이순신,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1592년6월14일>

이런방호력을바탕으로거북선은최선봉에서돌격선역할을수행했다.거북선이최초로출전한전투로알려져있는사천해전의상황을조정에보고하면서이순신장군은“먼저거북선으로하여금적선이있는곳으로돌진케하여먼저천자,지자,현자,황자등여러종류의총통을쏘게했다”고언급하고있다.

1970년대제작한민족기록화시리즈중한산해전도.거북선이가장앞서적선에돌격하고있다.

거북선은근접전을불사했던인파이터

이순신장군은1592년에5월벌어진1차당포해전의상황을이렇게묘사한다.“먼저거북선으로하여금층루선(層樓船)밑을치고들어가용의입으로현자철환을치쏘게하고또천자,지자철환과대장군전을쏘아그배를깨뜨리자,뒤따르고있던여러전선들도철환과화살을교대로쏘았다.”

마치인파이터스타일을구사하는권투선수처럼거북선이적의기함역할을했던층루선에바짝붙어함포를대량발사했다는이야기다.거북선이이처럼초근거리로접근해서전투를했다는목격담은일본기록에서도찾아볼수있다.일본측기록인[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는1592년7월10일벌어진안골포해전에서거북선이일본배에3~5칸(5.4~9m)까지접근한상태에서총통으로대형화살형발사체를쏘았다고기록하고있다.

“큰배중에3척은메꾸라부네(盲船:장님배)인데,철로요해하고있었다.석화시·봉화시·안고식화살촉등을쏘며오후6시까지번갈아달려들어공격을걸어와망루로부터복도,방패까지모조리격파되고말았다.석화시라고하는것은길이가5척6촌에달하는견고한나무기둥이며,봉화시의끝은철로둥글게든든히붙인것이다.이와같은화살로5칸,혹은3칸이내까지접근해서쏘았다.”

조선수군은어느정도적선과떨어진거리에서화약무기로승부는가르는것을선호했다.하지만파도가치는바다에서대포를쏘아적함을맞추는것은말처럼쉬운일이아니다.특히해상에서사거리가100미터가넘는경우명중정확도에한계가있었다.이런어려움을극복하는데쓰인배가거북선이었다고할수있다.거북선은판옥선보다강한방호력을바탕으로적선에최대한가깝게접근해코앞에서명중탄을날려보낼능력이있었다.최선봉에서인파이터처럼돌격하는거북선은그후방의판옥선이적선과일정한거리를유지하는데도도움이됐고,적의전투대형을직접적으로교란하는데도그만이었다.거북선은판옥선의가장훌륭한전투파트너였던셈이다.

거북선의발명자는누구였나?

이처럼거북선이탁월한배라면거북선의모든것에대해명쾌한결론이나오면좋겠지만그렇지못하다는것이문제다.당장거북선의발명자를놓고서도다양한견해가있다.[태종실록]에는1413년(태종13년)에한강에서거북선(龜船)과가상왜선이해전시범을보였다는기록이등장한다.2년뒤인1415년에도‘거북선이수많은적에충돌해도적이우리를해칠수없다’는설명도나온다.

하지만태종대이후이순신장군이다시거북선을만들기까지200여년동안거북선에대한기록이전혀등장하지않고각종함선의보유량을규정한경국대전에도거북선이누락되어있으므로당시거북선과이순신장군의거북선을같은것이라고말하기는어렵다.거북선의발명자가이순신휘하의군관이었던나대용(1556~1612)이라는주장도있다.이순신장군이실제배를만들수있는조선기술자는아니었으므로임진왜란이후에도해골선등여러가지새로운군함을만든나대용이실질적발명자라는주장이다.최근에는거북선의발명자가이덕홍(1541~1596)이라는주장도나온다.거북선그림과구조에대한설명이나오는이덕홍의문집[간재집]과“이덕홍이전쟁직전에류성룡에게거북선구상을전달했고,류성룡이이를다시이순신에게전달했다”는안동지역의전설을근거로든다.

1970년에완성한아산현충사‘십경도’중거북선제작장면.당시만해도거북선연구가부족해노구멍이서양식으로그려져있다.

하지만이같은주장은모두사료적근거가불투명한개인문집이나지방지,전설에근거하고있는주장이어서신뢰도에한계가있다.이순신의장계나조선후기의모든공식기록에서거북선을이순신이창제했다고일관되게기록하고있다.당시사회에서거북선이라는법규정외의새로운군함을만드는것은지휘관의결단이필요한일인데,그같은결단을내린사람은결국이순신장군이란점은분명하다고할수있다.

1979년작성한설계도에따라1999년다시제작한해군사관학교의1대1크기거북선모형

해군사관학교1대1크기거북선복원모형이진해만을항해하고있는모습

거북선은몇척이나되었나?

임진왜란개전초반이순신장군이보유했던거북선은3척이었다.임진왜란중중국에보낸외교문서를모아둔[사대문궤]에는전라좌수영거북선이5척으로기록되어있어2척을추가로건조했음을알수있다.임진왜란당시최대7~8척의거북선을보유했을것이라고추정하기도한다.임진왜란이끝난이후에는한동안이숫자가유지되다가1746년편찬된[속대전]에는거북선보유량이14척,1770년의[동국문헌비고]에는40척으로늘어났다.1808년에편찬한[만기요람]은30척,1817년에편찬된수군의함선목록인[선안]에는18척으로줄어들고있다.
 
이같은거북선숫자는주력군함인판옥선의보유량에비하면매우적은것이다.1746년을기준으로거북선보유량은14척으로판옥선보유량은117척에비해8분의1에불과했다.기록상가장많은거북선이등장하는1770년을기준으로따져도판옥선보유량은83척으로거북선40척의2배가넘었다.보유척수로보자면판옥선이조선수군의주력이고,거북선은돌격선이라는특수한역할을맡은군함이었던셈이다.

글김병륜/국방일보취재기자,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객원연구원
디펜스코리아자문위원을거쳐현재국방일보취재기자로근무하고있다.고대부터현대까지동북아시아지역의군사사를연구하고알리는데관심이많다.특히숨겨진우리의군사관련역사를집요하게추적하여밝히는것을보람으로생각하고있다.저서로[군사전문인을위한인터넷]등단행본과[조선시대학익진의도입과운용]등6편의논문이있다.

자료제공유용원의군사세계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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