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에서 잉크가 술술 나오는 이유
만년필에서잉크가술술나오는이유

[강기자의과학카페]<66>서울대김호영교수의‘글씨를쓰는원리에대한논문’

2012년02월20일

제공istockphoto

언제부터인가볼펜을쓰는게힘들어졌다.결국수성볼펜으로바꿨지만이것도별로였다.좀더편하게글씨를쓸수있는필기구를고민하던기자는만년필로눈을돌렸다.

며칠마다잉크를넣어줘야하고얇은종이에는뒤가비쳐한면밖에못쓰고글씨를쓴뒤마르기전에건드리면번지고차를마시다가종이에떨어뜨리면마른잉크가다시녹으며글씨가알아보지못하게된다.이런번거로움에도이제기자에게만년필은없어서는안되는필기도구가됐다.

그러다보니집과회사에잉크병이하나씩있다.한쪽에만있으면만년필을쓰다가잉크가떨어져곤란할수있기때문이다.가끔취재때필기를하다잉크가떨어지면집중도가확떨어진다.아무래도여분의만년필을갖고다녀야할까보다.

기자가이처럼만년필에집착하게된종이에글씨를썼을때잠깐유지되는잉크표면에서비치는빛의반짝거림이좋기도하지만무엇보다도글씨를쓸때힘이안들기때문이다.가볍게펜끝을움직이기만해도잉크가알아서술술나와종이에옮겨진다.

●볼펜은볼은굴려야한다

반면볼펜은그런식으로움직였다가는아무것도써지지가않는다.어느정도눌러가면서써야한다.볼펜끝의구슬이종이에마찰돼야구르기때문이다.구슬이굴러야위에있는잉크가아래로내려와종이로옮겨진다.기자는수년전에‘볼펜의과학’에대해꽤긴기사까지썼지만(<과학동아>2009년12월호‘볼펜한자루의과학’참조)사실이때는이미볼펜을쓰지않고있었다.

최근에뭘좀알아보려고서울대기계항공공학부홈페이지에들렀다가우연히뉴스란에서‘김호영교수연구팀논문,NaturePhys…’라는제목을보고클릭해봤다.김교수를수년전취재차몇차례만난적이있기때문이다.내용을읽어보니지난연말저명한물리학저널인‘피지컬리뷰레터스’에펜으로글씨를쓰는원리에대한논문을실었다는것이다.

수시로잉크병에찍어써야하는깃털로만든펜을대신해나온게만년필(엄밀하게말하면펜촉을쓰는딥펜(deeppen,잉크를찍어쓰는펜)을거쳐)이니이연구는만년필에서잉크가나오는원리를규명한셈이다.‘재미있는연구같은데왜몰랐지?’더사이언스홈피를검색해봐도없다.뉴스거리가많은연말에발표된거라누락됐나보다.김교수실험실홈피에들어가논문pdf파일을다운받아읽어봤다.

유리관을썼을때물(왼쪽)과수은(오른쪽)의모세관현상을도식화한그림.유리관내벽과접촉각이90도미만인물은위쪽방향으로모세관힘이작용하고관이얇을수록모세관힘이커져더올라간다.반면접촉각이90도가넘는수은은아래방향으로작용한다.(제공위키피디아)

유체역학분야논문이라난해했지만다행히기자는기업체연구소에있을때유체역학을좀공부했기때문에해독불가수준은아니었다.

만년필펜촉을보면가운데금이가있다.사실은금이아니라완전히잘려분리된두면,즉틈(slit)으로거의맞닿아있다.펜촉이종이에닿았을때틈이벌어지는폭에따라얇은선이나오는펜촉(EF,extrafine)에서굵은선이나오는펜촉(B,broad)까지다양하다.같은펜촉이라도더세게누르면틈이더벌어져좀더굵은선이된다.

김교수팀은모세관힘을분석해만년필에서잉크가나오는원리를설명했다.중고교물리시간에배웠듯이모세관힘은액체가관을타고올라가거나내려가는현상을일으키는힘인데관이얇을수록그경향이커진다.즉모세관힘이강해진다.모세관현상은액체의표면장력과관안쪽표면과맞닿은액체의각도(접촉각)때문에일어나는현상이다.

연구자들은만년필로글씨를쓰는건결국펜촉과종이가잉크를두고벌이는모세관힘의밀고당기기결과로잉크가펜촉에서종이로이동하는현상이라고설명했다.펜촉이야모세관으로볼수있지만종이가어떻게모세관일까.종이는우리눈에는매끈해보이지만확대해보면셀룰로오즈섬유가복잡하게뒤엉킨,일그러진모세관이라고볼수있다.

결국펜촉끝의잉크가종이로옮겨가는건중력때문이아니라모세관힘때문이다.만일중력이중요하다면종이를들고펜촉을위로향해글씨를쓰면잘안써질것이다.플라스틱필름코팅이돼있는(따라서모세관힘이미약한)명함위에메모를하려고해도글씨가잘안써지는이유이기도하다.

펜촉을종이에가만히대고있거나천천히움직이는것보다빨리움직이면더얇은선이나오는것도모세관힘사이의동적평형으로설명할수있다.잉크가펜촉에서종이로이동하는데시간이걸리기때문에빨리움직이면나오는잉크양이적어선이얇을수밖에없다.

옷속에만년필을꽂아뒀다가옷에커다란잉크얼룩이지는경우가있다.뚜껑이빠져펜촉이옷에닿은채방치된결과인데기자도이런적이몇번있다.이역시옷감조직의모세관힘때문에잉크가빨려나간결과다.

수식의계수를구하기위해만든종이모형의전자현미경사진.마이크로크기의기둥이규칙적으로배열돼일정한모세관힘을갖는구조다.(제공피지컬리뷰레터스)

●펜과종이를단순화해수식만들어

연구자들은펜과종이를모세관으로단순화시킨뒤이런변수를고려해잉크가나오는과정을수식(비례식)으로만들었고실제모형을만들어측정한데이터로계수(기울기와y절편)의값을구했다.즉펜의모형은유리모세관으로안쪽반지름이0.25~1.00mm,관의두께는0.1mm다.한편종이의모형은마이크로크기의기둥이일정하게돌출돼있는,큰친수성을주기위해산소플라즈마에칭한실리콘웨이퍼다.

연구팀은이렇게얻은수식을실제만년필과종이에적용해봤다.종이에닿았을때펜촉의틈은0.1mm(수식에적용하는반지름으로는0.05mm)이고종이에옮겨지는잉크필름의두께는5μm라고했다(이밖에종이의거친정도와잉크의표면장력,점도값도필요하다).1초에5mm속도로펜을움직일때수식에대입하면선의두께가0.82mm가나온다.실제만년필로선을그렸을때측정한두께는0.7mm로이론값과꽤가깝다.

한편펜촉을종이에대고가만히있을경우종이에번지는반점의크기를예측한수식도유도했는데앞의조건과같을경우펜촉을2초간대고있을경우잉크반점의반지름이3.0mm로나왔다.실제측정값은1.3mm로꽤차이가난다.연구자들은종이가잉크를머금으면서부풀어올라모세관힘이약해지기때문이라고설명했다.

서울대김호영교수팀은모세관작용을해석해펜을쓸때종이에남는잉크반점의크기와선의두께를예측하는수식을만들었다.왼쪽사진은만년필펜촉을2초동안종이에댔을때생기는반점과펜촉을이동했을때나오는선을확대한모습(아래검은막대길이는1mm).오른쪽은종이표면의전자현미경사진으로일그러진모세관으로볼수있다.(제공피지컬리뷰레터스)

5000년전고대이집트사람들이갈대펜으로파피루스에글씨를쓰던이래사용돼온잉크를이용한필기구의작동원리가이제야밝혀졌다는것도놀랍지만,단백질의구조계산처럼항이끝없이이어지고슈퍼컴퓨터가없으면풀수없는수식이난무하는요즘에도이런식의고전적인연구를할여지가남아있다는게신기하다.김교수팀이얻어낸,선의두께를구하는식을기념으로아래에적었다.

wf=0.16(f-1)γh/(fμu0)+5.55R

(wf는선의두께,f는종이의거친정도(roughness),γ는잉크의표면장력,h는종이에옮겨지는잉크필름의두께,μ는잉크의점도,u0는펜이움직이는속도,R은펜촉틈폭의절반)

강석기기자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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