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산 정취암 (大聖山淨趣庵)

지난주말에진주에서치른초딩동창의여식결혼식에참석하기위해서서울에서내려오는동창들과

합류하여결혼식을참관하고난후대성산(경남산청소재)아래에자리한동창의산장에모여서전야제

를좀거창(?)하게치룬뒤일요일아침에산행에나섰다.

산이래야해발오백여미터밖에안되지만그산의정상부근에의상대사가창건했다는정취암이라는

조그만암자답사가주목적이었다.

어릴적초중딩시절소풍으로몇번다녀간곳이었지만성인이되어서는아주오랜만에방문하게되어서

마음이좀설레기도했으나선발대로동창과둘이서가파른절벽수준의암자로오르니땀이비오듯

하여숨고르기가심히괴로울(?)정도였다.ㅎㅎ,전날의막걸리탓이겠지만남녁의봄날은너무

따뜻해서초여름을능가했으니이해하시압.

덕분에바위틈에마련한약숫물을몇바가지나축을내었다.ㅎㅎ,

그물을마시면서사람은변해도산천과물맛은변함이없음을다시금느껴보았다.

멀리서본정취암.지금은도로가개통되어암자앞마당까지차로갈수있다.

해장겸아침식사중..

소나무위로드리워진아직은앙상한느티나무가지들

화려하게피어난사월의꽃들이눈부시다

분홍빛진달래,참꽃으로불리기도한다

절벽위의암자가위태로워보인다

정취암본전인원통보전(圓通寶殿)

바위위에자리한석불(石佛)

암자뒤의가파른절벽바위

좋은말씀인것같다

홀로핀야생화

개나리도만발하고

절벽아래대나무숲

정취암에서내려다본대성산장

대성산전체에진달래가만발해봄의여신이노니는듯하다.가시는걸음걸음사뿐히즈려밟고가라던그시인이

이산에살았다면더고이보내주었을지도모른다는생각도해보고..,

우리뒤를따라온다른방문객들

푸르른솔에는솔방울이빼곡하다

처마끝에걸린날카로운암벽

산위에서내려다본정취암전경

이산에는어디에도진달래가반긴다

암자뒤바위에서

암자로개설된도로.방문객은편할지모르나자연이훼손되어서보기가안좋다

대성산정상에세워진팔각정에서

정상에서바라본황매산(1108m)의우람한자태

고향마을인단계쪽의고요한산하

전나무의새순도싱그럽다

파랗게돋아난엄나무순

대성산뒤편,여기저기도로가생긴이유는이지역일대에골프장을건설키로했다가진주시민또는

서부경남의남강수질오염우려로극심한반대에부딪쳐골프장건설은무산되고대신전원주택지와생태체험숲

조성공사가진행중이기때문이다

*정취암은

정취암은대성산정의절벽에자리한정취암은의상대사가창건했다고전해지며,정취암

탱화가유명한절이다.
기암절벽에매달린정취암은옛단성현(丹城縣)북방40리에위치한대성산(大聖山)의기암

절벽사이에자리한절로그상서로운기운이가히금강에버금간다하여옛부터소금강(小

金剛)이라일컬었다.
신라신문왕6년에동해에서아미타불이솟아올라두줄기서광을비추니한줄기는금강산

을비추고또한줄기는대성산을비추었다.
이때의상대사께서두줄기서광을쫒아금강산에는원통암(圓通庵)을세우고대성산에는

정취사(淨趣寺)를창건하였다.
고려공민왕때에중수하고조선효종때에소실되었다가봉성당치헌선사가중건하면서

관음상을조성하였다.
1987년도영당은원통보전공사를완공하고대웅전을개칭하여석가모니본존불과관세음

보살상,대세지보살상을봉안하였다.1995년에응진정에16나한상과탱화를봉안하고

1996년산신각을중수하여산신탱화를봉안하였다.이탱화는경상남도문화재자료제243

호로지정되어있다.
바위끝에서서올라온길을되돌아보면천장만장높은곳에서하계를내려다보는시원함

과적막과고요속에속세를벗어난느낌이든다.

-출처:산청군청문화관광홈페이지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