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흔적을 찾아서

충북괴산군괴산읍일대는소설[임꺽정]을지은벽초홍명희(洪命憙,1888~1968)선생의흔적이남아있는곳이다.항일독립만세운동으로옥살이를했고언론인,소설가,사회운동가로도활동한선생은월북이후우리나라에서는그이름조차입에올리면안되는월북문인이되었다.그러나월북문인해금조치에따라1980년대중반국내에다시소개된[임꺽정]은대중들의많은사랑을받았다.홍명희선생이태어나고자란고향산천,괴산읍내일대를돌아보며그를추억해본다.

벽초홍명희선생의자취가남아있는제월대.선생은저물에낚싯대를드리우고무슨생각을했을까?절벽위에는‘고선정’이라는정자가있다.

홍명희생가

33도를육박하는기온에가만히서있어도땀이난다.쨍쨍한햇볕아래기와얹은고택앞에선다.괴산읍동부리에있는홍범식고택은작가홍명희선생이태어난곳이다.홍명희의아버지홍범식은금산군수로있던1910년에일본이나라를강제로빼앗자자결한인물이다.고택옆에는홍범식선생의뜻을기리는비석이서있다.비석을뒤로하고고택대문을열고들어간다.

홍명희생가.‘ㅁ’자로보이는건물이안채,그오른쪽은사랑채다.

이집은조선영조때인1730년경에지어진것으로추정한다.이후1800년대중반에증축했고,1920년에주인이바뀌었다.생가는전형적인중부지방양반집의건축양식을보여준다.문간채와행랑채가있으며중문이안채와사랑채를나누고있는구조다.정남향으로지어진안채는정면5칸,측면6칸의‘ㄷ’자형이다.안채앞에‘ㅡ’자형광이있어위에서보면‘ㅁ’자형태로보인다.사랑채는홍명희선생등이1919년3월19일일제에항거하고민족의독립을위해일어났던괴산만세운동을준비한곳이기도하다.

홍명희생가는다른사람의소유가되었다가선생의생가를복원해야한다는뜻이모아지면서1997년‘홍범식ㆍ홍명희생가보전위원회괴산모임’이만들어졌다.이후복원을위한꾸준한노력덕분에지금과같은모습을갖추게되었다.

약3,300㎡대지에안채,사랑채,아래사랑채,중문,대문채,장독대,광채,김치광등이자리잡고있다.이집은건축사적중요성도있지만문학사에서차지하는비중과충북최초의만세운동본거지라는점에서도문화재의가치를지니고있다.현재충청북도민속자료제14호로지정됐다.

고택은돌담과기와지붕이어우러져그자체로따듯한정서를자아낸다.툇마루에앉아마당에고인햇볕을바라본다.담아래자라난풀이푸르다.하얀꽃이장독대항아리와잘어울린다.천천히걸으며고택이곳저곳을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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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옥은있는그대로아름답다.엇갈려모인기와지붕이담장너머로무슨이야기를나누는것같다.

2툇마루로오르는마지막발걸음은섬돌에놓인다.

고택을나와다리를건너오른쪽으로조금만가면큰길왼쪽에느티나무가보인다.그나무아래만세운동유적비가있다.홍명희선생등은1919년3월19일유적비가세워진이곳에서독립만세운동을일으켰다.당시이곳은사람들이많이모여들던장터였다.

제월리홍명희고택

홍명희선생은독립만세운동을주도한일로1년6개월간옥살이를한다.옥에서나온선생은동부리집에서3.8km떨어진제월리로이사를하게된다.

홍명희선생이출옥후에살았던제월리집.사진의건물은당시사랑채다.사랑채뒤에본채가있었는데지금은완전히사라지고없다.

제월리365번지를찾아가면홍명희고택이있다.이정표가없어내비게이션에주소를찍어찾아갔다.집앞에도홍명희선생과관련된집이라는표시가없다.

대문없는집마당에들어서면바로옛건물한채가나온다.옛날집본채에딸린사랑채건물이다.본채는완전히사라지고없는데그자리에작은정원을꾸몄다.정원한쪽에‘우리문화기림회’가세운표지석이이곳이홍명희선생이살던곳임을알려주고있다.선생은1924년서울로이사할때까지이곳에서살았다.

선생은1928년부터[임꺽정]을집필했으니괴산에서살때는작품활동과큰연관이없다.하지만선생의강인한품성과문학성감성을키워준것은고향괴산의자연이다.제월리집부근에선생이즐겨찾던제월대가있다.선생은제월대아래를흐르는괴강물줄기에낚싯대를드리우고사색하기를즐겼다고한다.지금그곳에는선생의뜻을기리는문학비가있다.

벽초홍명희문학비와제월대

제월리집에서‘벽초홍명희문학비’가있는제월대까지는약1km거리다.제월대주차장한쪽에문학비가보인다.

제월대에있는벽초홍명희문학비.

홍명희선생의월북과북한에서의행적등으로인해문학비건립자체를놓고찬성과반대의견이강하게대립했다.1998년에문학비를세웠으나철거됐고,이후협의를거쳐2000년에지금의자리에다시문학비를건립하게됐다.문학비글씨는신영복선생이썼다.중국상해에서박은식ㆍ신채호선생등과함께독립운동의방향을모색했으며,1919년괴산에서만세운동을주도한일과항일운동단체인신간회를결성한일,1928년부터10여년에걸쳐조선일보에소설[임꺽정]을연재했다는내용이새겨져있다.

[임꺽정]은조선시대백정임꺽정(?~1562)을주인공으로당시백성들의삶을잘묘사한대하소설로,조선일보연재당시에도큰인기를끌었던작품이다.글의분량이나내용으로도다른작품보다월등하게뛰어난최고의대하소설로인정받았다.해방직후단행본으로출판되기도했지만,월북이후에는작품은물론홍명희라는이름도입에올릴수없게됐다.그러다월북문인작품해금조치에따라1980년대중반다시출판되면서많은인기를끌었다.

고산정에서바라본괴강의물줄기.제월대절벽위에선고산정은선조때충청도관찰사유근이세운정자다.

문학비앞에는고산정이라는정자가있다.정자로올라가는길에소나무숲이보기좋다.정자에올라서면괴강물줄기가굽이치며흐르는풍경을볼수있다.이곳이제월대다.

제월대절벽위에선고산정은선조29년에충청도관찰사유근(柳根,1594~1627)이세운정자다.유근은이곳에만송정과고산정사를짓고광해군때낙향하여은거했다.숙종2년에고산정사는불타없어지고만송정만남았는데이를두고고산정이라불렀다.

주차장으로내려와서강가로내려가는길로접어든다.선생도이길을따라강가로내려갔을것이다.물줄기굽이쳐흐르는그곳에낚싯대를드리우고눈앞에펼쳐진풍경을바라보며아마도소설[임꺽정]을구상하지않았을까

자료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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