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친구

noname01

사람은 끼리끼리 만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마음이 끌려 친구로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고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친구하면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가장 순수하고 허물없는 친구겠지요.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늘 제2선에 있었습니다. 앞에 나서지는 못하고 뒤에 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친구들도 2선에서 머물던 친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워낙 공부를 잘해서 모두가 인정해 주는 녀석은 본인이 원치 않아도 떠밀려서 제1선에 서게 됩니다. 아니면 축구선수라든가 주먹께나 쓰는 친구들은 설치고 쏘다니기를 좋아해서 스스로 제1선에 나섭니다.
주먹이 근지러워 실력과시를 해 보여줘야 하는 친구들입니다.
고학년이 되면서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은 두드러집니다.
주먹 쓰는 친구들은 한 무리가 되어 몰려다닙니다.
몰려다니면서 이 친구 저 친구 집적대보고 괴롭히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그런 친구들 눈에 안 띄도록 조용히 지내는 게 나와 내 친구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패거리들 중에 키는 작아도 운동을 해서 어깨가 딱 불어진 게 근육질인 체구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키가 큰 나를 쳐다보면서 급우들 보기에 창피스러울 정도의 막말을 서슴지 않고 해 대곤 했었습니다. 모욕적인 언행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건 개의치 않았습니다.
상대를 무시하는 말을 하면 할수록 자긍심을 느낀다고나 할까 으스대는 것이었습니다.
언어폭력에 심리적 폭력 그리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정서적 폭력까지 당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나는 늘 그의 시선을 피해 다녀야하는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만나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세월이 흘러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에드먼턴 캐나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괴롭히던 어깨친구 역시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늘 그립고 보고 싶지만 나를 괴롭히던 어깨친구는 보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그리운 친구와는 편지 연락을 끊임없이 해 대서 서로의 소식을 다 알고 지내지만 그래도 만나보고 싶은 게 친구입니다.
한번은 2주간 휴가를 얻어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캐나다로 향했습니다.
경치 좋은 밴프며 재스퍼를 지나 친구내 집에 갔습니다.
마침 친구 부인은 출산하러 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대신 어머님이 계셔서 피난시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지냈습니다.
친구는 내게 어깨친구를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물어 왔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습니다.
친구가 들려주는 그의 근황은 “개꼬리 3년 묻어둬도 개꼬리대로 있다”고 하면서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돈 잘 버는 간호사 와이프를 둔 덕에 비슷한 사람들 끼리 몰려다니면서 비생산적인 일이나 해대고, 골프나치면서 지낸다고 하더군요.
살면서 터득하게 되었지만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바쁘게 살던 어느 날 그리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를 보내놓고 이웃에서 살고 있는 어깨친구한테서 싫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부인을 시켜 음식을 한상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그냥 가버렸다고 화가 나 있더라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해서 사는 친구이니 혼자가 아닙니다. 부인의 얼굴도 있는데.
졸렬하게 어렸을 때 일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 봐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언제나 그리운 친구는 내게 전화를 걸면서 매우 난처해하는 것입니다.
어깨친구가 샌프란시스코 구경도 할 겸 너의 집에 가겠다는데 어떻게 해야 좋으냐는 것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지만 나는 어깨 친구와 한 번도 말을 터놓고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그와 마주칠 때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 그 자리를 빨리 모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지만 전에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미안한 생각이 앞서는 겁니다.
안 만나고 살아보려 해도 그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더군요.
할 수 없이 환영한다고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어깨친구는 옛날 어깨가 아니었습니다.
딱 벌어졌던 어깨와 근육질의 팔뚝은 어디로 사라지고 동안인 얼굴에 주름이 있고 왜소한 몸집은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20여년 만에 만났는데도 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밤에 술을 마시자는데 술을 안 마시는 나의 집에는 술이 없습니다.
술이 없으니 담배만 피우는 친구에게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담배는 끊어야 하지 않겠니?”했더니
“술, 담배 다 끊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글세, 술 담배 안 해도 인생은 재미있던데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를 찾아온 손님을 면전에 대놓고 민박을 줄 수도 없어서 참고 말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주방을 끼고 있는 아침식사 테이블에 모여 앉았습니다.
커피를 마시려는 참이었습니다.
나는 어깨친구의 부인을 처음 보았고, 친구 역시 나의 아내를 처음 만난 것입니다.
느닷없이 어깨 친구가 주방에서 아침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아내에게
“아줌마”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엉뚱하게도 내가 찔끔하면서 당황스러워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서른을 막 넘은 아내는 아줌마라는 호칭을 평생처음 듣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눈치 빠른 아내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 사람이 날더러 아줌마래”하면서 나를 바라봅니다.
기가 막힌다는 뉘앙스가 풍겨 나오고 있었습니다.
일순간 분위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깨친구도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아줌마가 뭐 나쁜 말이냐?”하고 묻는 겁니다.
여기서 아줌마를 논 할 때가 아니다 싶어 커피부터 마시자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한 번도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칠순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그리운 나의 친구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 통화를 합니다.
엊그제 통화에서 가련한 어깨친구가 폐암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줍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그 친구 결국 담배 때문에 죽고 말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싫으나 좋으나 한번 동창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똑똑하지 못한 나는 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우칩니다.
아무 말이나 닥치는 대로 막 해대는 것은 그가 나뿐 마음을 품고 있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랬다는 걸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더군요.
친구를 이해하고 나니까 모진 추억이나마 남겨주고 떠난 어깨친구가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 편 한대로 해석하는 자신이 참 야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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