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이야기

딸이 집에 와 있는 바람에 같이 온 개 ‘루씨’는 나와 함께 운동길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딸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햄스터, 토끼, 뱀, 거북이 등을 기르더니 이번에는 개에게 정을 다 쏟고 있습니다.
루씨는 알라스카 머스키로 눈동자가 푸른색입니다.
흘켜보는 눈이어서 나는 그의 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눈매가 무섭게 생겼으나 성질은 온순하고 말을 잘 듣고 잘 짓지 않는 편입니다.
나도 이런 저런 개들을 길러 봤지만 허스키는 좀 다르더군요.
개들이 보통 먹이 앞에서는 치사하고 비굴해 지기 마련인데 허스키는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알라스카에서 추운 겨울 날 고기 한 덩어리 먹고 하루 종일 달려야 하는 개여서 그렇다고 하는데, 글세요, 알 수는 없으나 개 치고는 먹이 앞에서 매우 신사적입니다.
그러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루씨의 눈을 보고 눈이 예쁘다고들 합니다.
개가 푸른색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일곱 살 반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50줄이 된 셈입니다.
개는 영특해서 내가 운동을 나가는 건지 출근을 하는 건지 다 알고 있습니다.
운동을 가려고 모자를 쓰고 일어서면 지가 먼저 문 앞에 서서 같이 가겠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줄을 목에 걸어도 도망도 안가고 순순히 목을 내 밀어 줍니다.
처음 문밖으로 나서면 개는 고개를 들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는 시늉을 합니다.
정말 신선한 표정도 짓습니다.
앞에서 너무 힘차게 끌어 당겨 대서 억지로 끌려가는 격입니다.
개는 5분이 멀다하고 오줌을 눕니다.
남의 잔디밭에서 오줌을 질깁니다.
루씨는 암캐입니다, 숫개는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니까 누가 봐도 오줌 눈다는 걸압니다. 그러나 암캐는 앉아서 오줌을 눋기 때문에 까딱하다가는 남들에게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마치 대변을 보는 줄 아는 겁니다.
남의 집 잔디밭에 대변을 보면 비닐봉지로 수거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소변은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암캐는 소변도 대변보는 모양새를 취하다보니 마치 개변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얌체족처럼 보일 것 같아서 신경이 쓰입니다.
목에 줄을 매고 주인이 붙어 다녀야 하는 게 개입니다.
개는 아무데서나 변을 봅니다. 말릴 수가 없습니다.
창피한 걸 모릅니다. 이미 나는 개니까 하는 식입니다.
기쁘나 슬프나 낼 수 있는 소리는 한마디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멍멍 지져댑니다. 기뻐도, 반가워도, 겁이 나도 지져댑니다.
개는 비밀을 발설하지 않습니다. 꼭 지켜줍니다.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감아줍니다.
나는 한 번도 개가 주인에게 화를 내는 걸 못 봤습니다.
내 맘대로 이 길로 가다가 돌아서 저 길로 가도 개는 군소리 없이 따라줍니다.
나도 개를 좋아하는 사람에 속합니다. 그러나 덩치 큰 개가 집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꼴을 좋게 봐 줄 수는 없습니다. 소리를 질러 제지시키고 싶은데도 개 주인인 딸이 보고 있으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겁니다.
사실 나는 혼자서 운동 길에 나서고 싶습니다. 혼자서 걸어가면 여러 가지 생각도 정리되고 문제점도 풀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와 함께 나서면 개에게다 신경을 써 줘야 하기 때문에 딴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운동길에 나서려고 하면 개와 같이 가라고들 합니다. 개가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어서 운동이 필요하다고 같이 가라는 겁니다. 싫어도 싫다는 내색을 할 수 없습니다. 개 주인이 딸이니까.
어쩔 수 없이 끌고 나서면 만나는 사람마다 “허스키지 예쁘네요.“하며 인사를 해 대니 그럴 때는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개목에 맨 줄이 길어봤자 1.5m 안팎입니다. 개가 공원에 나가 자유를 누린다고 해 봤자
1.5m 짜리 자유밖에 없습니다. 1.5m 이내에서 누리는 자유이지만 그렇게도 갈망하고 있습니다.
개 줄을 잡고 걸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개는 나에 의해서 통제당하고 있습니다. 1.5m의 자유밖에 누리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로부터 통제를 받고 있는가?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사슬이 나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제한된 거리 안에서 활동해야만 합니다. 목을 매고 있는 줄이 눈에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통제 받고, 억압 받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내가 루시 목을 매고 있는 줄을 잡고 있듯이 휴대폰이 나의 목을 동여매고 당기고 있습니다.
벨이 울리면 가야 합니다. 결국 문명은 나의 자유를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마치 루시 목의 줄처럼.

‘루시’ 사진을 업로드 하려고 여러번 시도해 봤으나 번번이 “죄송합니다. 이 파일타입은 보안상의 이유로 허용되지 않습니다”하는 글만 나타날 뿐 업로드가 되질 않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들 인데 왜 안 되는지 알 수 없군요. 다른 사진들을 시도해 봤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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