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레이건 전 영부인, 남편과의 첫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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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레이건 전 영부인이 향년 94세로 지난 일요일 영민했다.
영부인 낸시는 로스안젤레스 자택에서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다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시미 밸리에 자리잡고 있는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 있는
2004년 6월5일 사망한 남편 옆에서 잠들 것이다.
장례식은 금요일 오후 2시로 결정되었다.

낸시는 1921년 7월6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고 말았다.
어려서는 삼촌네 집에서 자랐고 엄마가 정신외과의사인 로얄 데이비스와 결혼해서
시카고에서 살게 되면서 그리로 입양되었다.
새 아버지의 성을 따서 낸시 데이비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성인이 되면서 허리우드로 진출했고 MGM 영화사를 통해서 11편의 영화를 촬영하면서
잘 나가는 여배우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뜻밖에도 복병을 만났다.
공산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던 1949년이었다. 그녀와 이름이 똑같은 공산주의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정치적 사건에 휘말렸다. 대중들은 영화배우 낸시 데이비스가 공산주의자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이 불랙리스트에 올라가면서 허리우드에 존재하는 공산주의자 처단에
그녀가 포함되고 말았다.
낸시는 당황했고 이 사실을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친구는 영화협회 회장직을
맞고 있던 로널드 레이건을 만나 해결해 보도로 주선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낸시가 앞으로 남편이 될 레이건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낸시의 마지막 영화 “말광량이 낸시”를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촬영하면서 사랑은
무르익었다.
두 사람은 1952년3월4일 로스안젤레스의 작은 교회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 되면서 정치적 노선을 같이 걷게 된 것이다.

역대 미국대통령 중에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 조각상 중에 워싱턴, 제퍼슨, 루즈벨트, 링컨
그리고 그 옆에 레이건을 조각해 넣자는 여론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을 정도다.
낸시는 대통령 영부인시절  한국을 공식 방문했었다.
1983년 11월 12일 한국을 방문해서 시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레이건 기념 도서관은 300명이나 되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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