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실종 미군 유해 65년만에 고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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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6. 4. 6. 수요일 석양, 로버트 그레이엄 상병의 유해가
성조기에 덮여 고향인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제복 입은 군인들의
명예로운 에스코트를 받으며 운반되고 있다.
이 사진은 ‘모두의 시선’ 화랑이 선정한 금주의 사진 베스트 10에 뽑혔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로 끌려가 수용소에서 숨진 미 육군 로버트 그레이엄
상병의 유해가 65년 만에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로버트 그레이엄 상병은 1930. 12. 19.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했으며
미7사단 13공병대대 A중대에서 복무했다.
1951년 1월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그레이엄 상병과의 연락이 두절됐다.
미군당국은 1951년 2월 13일 로버트 그레이엄 상병이 실종됐음을
공식발표했다.
1953년 종전과 동시에 포로교환으로 돌아온 미군 포로들은 그레이엄
상병이 북한 지역의 포로수용소에서 1951년 5월 31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전해왔다. 미군은 사망확인을 발표하면서 상병으로 진급시켰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였다.
1993년 수안 포로수용소가 소재해 있던 황해도 도산읍리에서 발굴된 포로
유해상자 31박스를 접수했다.
미군은 지난해 그레이엄 상병의 조카들로부터 DNA를 확보해 유해와
대조하는 검사를 벌여 그레이엄 상병의 유해를 확인했다.

그레이엄 상병의 유해는 6일 조카 제임스 조지(59, 페어필드)
퇴역 해병상사의 인도 아래 하와이에서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로
이송됐다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보도했다.
그의 유해를 송환한 조카 조지는 “가족들이 그동안 애가 타도록 삼촌을
기다렸는데 65년 만에 한 줌의 재가 돼 돌아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삼촌을 기다렸던 형제자매 8명은 모두 돌아가신 상태”라며
“한국전서 실종된 군인의 가족들은 유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그레이엄의 조카 니콜 벤투렐리(51, 레드우드시티)는 “아버지와 삼촌은 9남매
중에서도 각별한 사이였다”면서 “아버지는 삼촌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애를
쓰다가 1995년 돌아가셨다”고 밝혔다.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은 7천800여 명에 이른다.
북한은 1990∼1994년 신원 미상의 미군 600여 명의 유해 파편 208상자를
미국에 송환했고, 2000년에는 미국•북한 합동조사팀이 당시 전투 현장
근처에서 추가 유해들을 발굴했다.그레이엄의 유해는 4월 8일 금요일 명예로운 군장례 의식을 갖추어
콜마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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