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낙산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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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예문
사반세기 만에 아내와 함께 양양의 낙산사를 찾았다.
2005년 산불로 전각이 모두 불에 타던 모습이 엊그제 같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세월은 정말 빠르게 흐른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생소하고 낯설다.
홍예문에 앞에 와서야 여기가 낙산사라는 인식이 깨어난다.
홍예문(虹霓門) 무지개 홍, 암무지개 예, 자를 썼으니?
무지개에도 암컷, 수컷이 있나?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성곽이 눈에 띈다.
잘 그려진 유자형 석조물과 그를 감싸고 있는 주변 석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죄 많은 세조가 멀리 낙산사까지 행차해서 의상대사처럼
보살님을 만나 업을 사하려 한들 이루어 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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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
세조의 행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옛 종은 사라지고 새 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산불이 났을 때 TV에서 종의 최후를 보여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 종을 보면서도 새 종은 보이지 않고 사라진 옛 종만 보이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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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일루
빈일루(賓日褸) 손님 빈자를 썼으니 태양손님을 맞이하는 누각이렸다.
동해 일출을 맞는다는 누각이다.
초파일이 막 지난 때여서 연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보기에 더욱
그윽하다.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빈일루 이다.
사천왕문에는 무서운 흉상을 지닌 천왕들이 중생에게 겁을 주어
감히 부처님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현세의 중생들은 이미 극락과 지옥을 다 드나들다가 온 사람들이어서
사천왕을 보아도 감흥이 사라진지 오래다.
마침 어린 아이가 사천왕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혹시 아이는 사천왕을 보고 두려움을 느낄까?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컴퓨터 께임에서 이것보다도 무서운
“뭐 뭐”를 만 번이나 해 봤는데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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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과 7층석탑
671년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위치를 전해 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고 적혀 있으니
의상대사가 점지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원통보전에 봉인된 건칠관음보살좌상은 화마에서 구해낸 고려시대
관음보살좌상 오리지널이라고 한다. 천만 다행이다.
새로 지은 전각들은 전통 덧문은 물론 존재하지만 안쪽으로
양식 스라이딩 그라스도어를 설치해 놔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의상대사가 처음 세울 때 3층이었던 것을 1467년 7층으로 높였다고 한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대사가 뜻이 있어서 3층 석탑을 세웠을 것인데 그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고 7층으로 개축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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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88올림픽 직후 와 봤을 때는 절과 절 주변이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담장이 원통보전 뒷켠에만 있었고 운치가 뛰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전각들도 너무 많이 들어섰고 담장도 새로 짓고 길게 연결해 놓았다.
전자기기는 새것일수록 좋지만 담장은 옛것일수록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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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문
원통문(圓通門), 예전에 없던 문이 보인다.
“이 문을 통해 걸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쓰여 있다.
영어로도 중국어로도.
“Path of making a dream come true”
“以願入想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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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
해수관음상은 높이 15m, 둘레 3m의 거대한 불상 조각이다.
바다를 등지고 불상을 바라보면 관음보살이 백두대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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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전
사실 의상대사가 관음굴에서 21일 동안 기도드리다가 만난
관음보살님이 이러했으리라.
그러나 내 눈앞에 나타난 보살님은 시네마스코프 영상 같으니
수준이 드러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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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공중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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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
한반도 어디를 가나 의상과 원효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만큼 우리에게 의상과 원효는 익숙하다. 그러나 외모는
그려지지 않고 이름만 떠도는
존재이기도 하다. 누구의 그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듯하다.
강원도 낙산에는 예로부터 관음보살이 머문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려고 동쪽 벼랑에서 21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하였다.
그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구루의
대나무가 있을 것이니 그곳으로 가 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 원통보전을 세웠다.

불에 타 버린 낙산사를 복원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애를 써서
잘 꾸며놓았다.
이번에 낙산사를 돌아보면서 나는 아쉬움을 느낀다.
왜 불과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새 길을 이리저리 뚫고
이렇게 많은 전각들을 세워야만 했는가?
중생들에게 불심을 심어주는 것이 종교의 목적일 진데
전각 하나를 짓는 동안에도 중생들은 깨우칠 것이 많을 것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에 시공해서
130년이 지난 지금도 짓고 있다.
정부와 재벌들의 원조는 다 거절하고 오로지 신도들의 헌금만으로
짓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미완의 성당을 들러보면서 종교의 위대함을
몸으로 느끼고 간다.
우리의 낙산사가 이름 없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보다 못한 게 뭐가 있나.
전체적인 윤곽과 설계도만 그리는데도 10년으로는 모자를 것이다.
하물며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수 십 채의 전각을 다 지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서둘러 빨리빨리 공사를 끝내야만 하는가.
그 과정에서 중생이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어설픈 내 눈에도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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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공양
점심시간에 돼서 국수 한 그릇 얻어먹었다.
원하는 중생들에게 국수공양을 해 준다.
아무런 양념도 넣지 않았건만 맛이 훌륭하다.
국수를 먹으면서 테이블 위에 적혀있는 글귀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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