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같은 길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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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삼아 매일 저녁 같은 길을 오갑니다.
갈 때 본 것, 올 때 보고, 올 때 본 것, 내일 또 보고, 보고 또 보는 게
일상입니다. 똑같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릅니다.
오늘은 일몰이 아름다웠습니다. 붉은 태양이 나뭇가지에 걸려 겨우 남아
있으려나 했더니 그냥 넘어갑니다.
카메라 꺼내 들고 노려볼 틈도 주지 않고 금세 넘어갑니다.
걷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립니다.
유도 선수 땀 흘리듯 그렇게 흘러내립니다.
땀은 머릿속에서 흘러내리며 눈으로 들어가 눈을 따끔따끔하게도 하고
뒤통수로 흘러내려 마치 지렁이 기어가듯 간질이기도 합니다.
늘 땀 닦는 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오늘은 그만 카메라를 꺼냈다
넣다 하다가 어딘가에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손으로 닦으면 닦으나 마나 금방 다시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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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지 못했던 물오리가족이 오늘은 눈에 띕니다.
농수로를 따라 일렬로 줄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습니다.
엄마 오리가 앞장서고 새끼오리들이 줄을 서서 따라가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분명, 주인 없는 야생오리 같아서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디서 겨울을 나며 어디서 부화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도심 속에 야생오리? 어떠면 호수에서 잠시 나들이로 농수로를 따라
올라왔을 지도 모릅니다.
오리라고 해서 세상사 궁금한 게 왜 없겠어요?
호수보다 좋은 환경을 찾아 나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리보다 한 수 위인 내가 보기에는 이 지역에서는 호수가
가장 훌륭한 지역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호수 떠나면 고생뿐입니다. 사람도 고향을 떠나면 고생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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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 보면 샘물이 땅에서 솟아나는 곳이 있습니다.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더니 여름이라고 해서 더 많이 치솟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 같으면 이곳에 우물을 파서 식수로 사용했을 법한 샘물입니다.
그냥 버려지는 샘물인 줄 알았더니 샘물이 제 몫을 하네요.
이름 모를 새들이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
새들도 위생상 좋지 않은 농수로 물은 마시지 않습니다.
지들도 알아서 깨끗한 물을 찾아다니면서 마십니다.
어떠면 새들이 인간보다 물맛을 더 잘 알 것도 같습니다.
새들은 색깔을 구분할 줄도 알고 아름다운 꽃을 구별해 내는 능력도 갖추고
있는데 물을 보고 마실만한 물인지 왜 모르겠어요?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서 참새도 잡아먹었는데 지금은 먹을 게
넘쳐나다 보니 새를 봐도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좋아지면 새들도 평화와 풍요를 공유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이 늦었는데 수녀님이 앞서서 부지런히 걸어갑니다.
운동을 나오신 것 같지는 않고, 갈 길이 늦어진 모양입니다.
친구 중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조상 때부터였으니 친구도
독실할 수밖에요.
아들이 둘이었는데 내 친구는 장남이니까 집안농사를 이어받았고,
둘째는 신부님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동생을 신부가 되는 성심중학교에 입학시킬 때 친구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농사만 지으시던 부모님이 신앙에 빠져서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게
올바른 일인가 하고요.
세월이 흘러 동생은 주교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들 하나에 딸이 셋입니다.
명절 때면 주교님이 집에 오십니다. 친구는 주교님을 볼 때마다
민망했습니다.
마치 욕심이 많아서 자식이 넷이나 되면서 하나도 출가시키지 않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었습니다.
딸 중에 막내딸이 가장 착하고 예쁩니다. 서강대 대학원을 졸업하더니
어느 날 수녀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또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낫습니다.
알만큼 다 커버린 자식이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막내딸은 수녀가 되어 지금은 로마 교황청에 가 있습니다.
앞에 걸어가는 젊은 수녀님을 보면서 생각나서 적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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