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얼마나 행복한 계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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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더위를 모르고 살다가 이번에 한국에 와서 겪는 더위는
근본적인 내 생각을 바꿔버렸다.
옛날 라스베이거스 갔을 때 생각이 난다.
불볕 같은 태양아래 푹푹 찌는 더위가 라스베이거스 같다.
여름 더위라는 걸 잊고 살다가 이번에 겪어보고 정신이 번쩍 든다.
오후에 길을 나서면 지열과 음식점 에어컨디션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사람을 환장하게 후끈거린다.
천천히 잠시만 걸어도 머리에서 땀이 솟아 뒷덜미로 흘러내린다.

오래간만에 동생 부부를 강남 전철역 분수대에서 만났다.
LA에서 사는 동생네가 갑자기 서울에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젊은 사돈댁 마나님 장사에 참석하려고 왔단다.
아니, 팔팔하기가 새댁 같아 이제 겨우 60을 넘겼는데 돌아가셨다니?
강원도 산골짜기로 나물 캐러 갔다가 벌에 쏘였는데 산이 깊어서 전화도 안 터지고
구급대원이 찾아오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은 돌아가셨단다.
듣기만 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하철 광장은 이리저리 구멍을 뚫어 쇼핑 거리를 늘켜 놨다.
늘키다 못해 아예 지하 백화점을 열었다.
땅 속을 대낮처럼 밝혀놓고 밤인지 낮인지 구별하러 들지말고 그저 돈이나
펑펑 써대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마치 나는 첨단문화에 젖어서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궁전’이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삐까번쩍 으리으리하게 차려놓고 식당 내부를 이리저리 비틀어 차별화 해 놨다.
맛은 별것도 아닌데 인테리어로 손님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무엇을 노리려는가?
찜통 같은 무더위는 화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화제는 피서방법으로 이어진다.
늙어가면서 피서 방법으로는 산으로 바다로 쏘다니는 것 보다는 집에 누워
책이나 읽는 게 제일이아고 했다.
젊어서 책을 좋아했던 제수씨는 오래전에 백내장 수술을 받고 난 다음부터는
책을 못 읽는다고 했다.
안 읽는 사람은 이래서 못 읽고 저래서 못 읽는 법이다.
읽는 사람은 이래도 읽고 저래도 읽는다.
나의 한여름 피서 방법은 집에서 뒹굴면서 책이나 읽는 일이다.
그것도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서 오래 읽을 수도 없다.
오래는커녕 일이십 분만 지나도 금세 보이질 않는다.
안경을 새로 만들어 써 보지만 그것 역시 효험이 별로다.
안과에서는 안구가 건조해서 그렇다면서 ‘카이닉스 점안액’을 사용해 보라고 한다.
노안에는 약도 소용없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안경을 끼고 책을 읽되 그 앞에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글씨를 보면 눈에 피로감이
덜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왼손으로는 책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둥근 돋보기를 들고
안경은 안경대로 끼고 책을 읽는 모습이 웃기고도 남는다.
남이 볼까 봐 아무도 보지 않는데서만 책을 읽는다.
좀 불편하기는 해도 눈이 피로하지 않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동안 읽지 못하던 때를 생각하면 매우 만족스럽다.
내가 아는 할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포르투칼에서 이민 온 지 오래다.
나이가 94세여서 지금은 딸에게 얹혀살고 있다.
유럽애서 온 사람들이 그렇듯이 신앙심이 강해서 지금도 틈만 나면 성경을 읽는다.
그런데 할머니의 성경 읽는 모습이 우스워서 못 봐주겠다.
시계 수리하는 사람들이 한쪽 눈에 끼는 외가닥 현미경 같은 돋보기를 끼고
성경을 읽는다. 뭐가 보이느냐고 했더니 글씨가 크게 보여서 성경 구절 읽는
데는 별반 지장이 없다고 한다.
지금 내 모습이 그 짝이다.

밖은 연일 더워서 3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되고 있는데 나가 다닌다는 걸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이럴 때는 마룻바닥에 누워 책이나 읽으면서 소일하는 게 제일 좋은 피서다.
누워서 뒹굴다 보니 배 곱은 줄도 모르겠다.
끼니가 되었는데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저녁 7시가 되면 해가 서쪽으로 거의 넘어간다.
반바지에 소매 없는 셔츠를 입고 운동하러 나선다.
더워서 모자도 안 쓰고 손에는 수건 하나 달랑 들고 나선다.
걷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수건 없이는 흐르는 땀을 감당하기 어렵다.
다행히도 숲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이 더위에 누가 걷기를 즐기겠는가.
아무도 없는 숲길을 나 홀로 걸어서 좋다.
호수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딱 한 시간이 걸린다.
찬물에 샤워해도 땀은 쉴 새 없이 흐른다.
땀도 고집이 있어서 흐를 만큼 흘러야 멎는다.
한여름 피서가 땀과 함께 자자들 때쯤이면 도로변 의자에 앉아
편의점에서 들고 나온 맥주 깡을 터트린다.
처음 마시는 시원한 한 모금이 여름은 얼마나 행복한 계절인가를 말해준다.

옛날에는 이 더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쉬지 않았나싶다.
그늘 중에는 고목 밑의 그늘이 최고로 안다.
건물이 만들어 내는 그늘은 땅의 열기가 살아있어서 여전히 더운데
나무는 열기를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나무 밑은 열기가 없어서 시원하다.
웃물에 담 구워 두었던 수박 한 덩어리 쪼개서 나눠 먹으면 더위가 가셨었다.
정 더우면 부채질을 하면 더위가 사라졌다.
지금은 수박을 냉장고에서 얼다시피 해서 먹어도 더위는 안 가신다.
부채질을 아무리 빨리 부쳐대도 소용없다.
선풍기 앞에서야 그제서 옛날 부채질만 하다.
옛날에는 더위가 약했다고? 그렇지 않다. 옛날에도 더웠다.
그러나 그때는 녹색의 숲이 있었다.
숲을 지나온 더위는 지금처럼 성깔을 부리지는 않았다.
더위도 유순하고 부드러웠다.
지금은 가도 가도 시멘트 숲뿐이니 더위도 짜증이 나리라.
거기에다가 더위보다 더 뜨거운 자동차 배기가스나 에어컨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더위를 이기려고 해대니 더위도 기가 막힐 것이다.
짜증 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랴.
연일 더워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인간, 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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