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네 집에서 배곯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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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은 코앞에 다가왔다.
성큼성큼 다가왔다는 표현은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눈 깜빡할 사이에 찾아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손주 돌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여름 방학 동안 아들네 집에 사돈댁이 와서 두어 달 머물다 갔다.
멀리 싱가폴에서 왔다. 일본인이지만 아들이 싱가폴에서 사업을 하는 관계로
그곳에서 산다.

손자가 금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가 유치원에 다닌다.
외할머니가 가시고 난 다음 베이비시터에 차질이 생겼다.
아내는 9월 마지막 주 하고 10월 첫 번째 주 화요일에 와서 아이들을 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들네는 좀 멀리 떨어져서 산다.
한국으로 치면 우리가 일산에서 살면 아들네는 수원쯤에서 사는 식이다.
아이들을 봐 주기 위해서는 아내가 아들네 집에서 하룻밤을 자야 한다.
아내가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고 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며느리는 오후 4시경에 학교에 가서 밤 9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가까운 초급대학에서 야간강의를 맞고 있다.

아내는 일찌감치 1시경에 갔다. 마침 며느리가 아이들 점심을 차려주고 있었다.
아이들 점심만 있고 아내 몫은 없더란다.
할 수 없이 가지고 간 사과 하나로 점심을 때웠다고 했다.
저녁때가 돼서 만들어 놓고 간 아이들 저녁을 차려 주었다.
갈비 네 쪽 덮여서 밥도 아이들 먹을 만큼만 있어서 차려 주기는 했는데
진작 본인이 먹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7시까지 기다려 아들이 퇴근했다.
아들더러 저녁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직장에서 먹고 왔단다.
아들은 삼성에 다닌다. 삼성에서는 저녁도 주는지 맨 날 먹고 온단다.
이제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데 정말 배가 고프더란다.
아들에게 나도 저녁을 먹어야 할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 뭐 먹을 게 있나 하면서 냉장고를 들여다보더니 이것저것 꺼내 덮여줘서
겨우 끼니를 때웠다.
아들네 집이라고 해도 남의 집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남아도는 음식 없이 매번 끼니마다 먹을 만큼만 해서 먹어치우니
냉장고를 열어봐도 먹을 게 없다.

다음 날 아침에 며느리가 이것저것 하기는 했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커피 마시는 거로 아침을 때우고 아이들만 아침을 챙겨주더란다.
현미밥을 딱 두 아이분만 지었다고 했다.
유별나게 손주들은 현미밥을 먹는다.
아내는 배가 고파서 아침 먹을 거 뭐 없느냐고 했다.
어른도 아침을 먹나 하는 식으로 조금은 의아해하는 눈치더니 냉장고에
얽혀 두었던 찬밥을 꺼내 전자 오븐에 덮인다. 그리고 햇밥도 덮인다.

아내는 아들내외한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오로지 내게 실망과 언짢은 심정을
토해냈다.
내가 들어 봐도 이건 아니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못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옛날 우리가 장모님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났다.
장모님을 아이들 좀 봐 달라고 모셔다 놓고, 아이들 먹을 것만 챙겨주고
장모님은 알아서 잡수시겠지 하고 내버려 두었던 생각이 난다.
사람의 머리는 단순해서 하나만 생각했지 그 이면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아내가 당하고 와서야 옛날 장모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
장모님이 우리 부부에게 몇 번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귀에 안 들어 왔다.
챙겨드리지 못한 죄를 고대로 되 물려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바쁘기만 했지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
끼니를 식구가 모여서 먹지 못하고 각자 해결하리만치 바쁘게 산다.
이런 세태가 잘 사는 시대인지 아니면 막가는 시대인지 나로서는 분별이 안 된다.
아내는 말했다.
“나 먹을 것도 만들어 놔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만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이번에는 내가 먹을 것을 싸 가지고 가야 하겠다.“고 했다.
내가 말해 줬다.
맛있는 것 많이 싸 가지고 가서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서 먹으라고.

1 Comment

  1. 김 수남

    2016년 10월 7일 at 8:43 오전

    네,정말 그런 일이 계셨군요.지나고 봐야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이 또 사람인가봅니다.아드님 부부도 나중에 손자 낳아서 돌봐 주면서 또 부모님 마음을 더 잘 알게 되겠지요.그래도 너무 하네요.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다르다지만 기본은 여전히 같은데요.

    “너네 집에 배고파서 못가겠다고” 아예 선포를 해 보세요.그러면 혹시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지도요.정말 자기들 생각대로 생각하다보니 어머니도 아침은 안드셔도 되시는 줄 아나봅니다.어머니는 아침 밥 드셔야됨을 알려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를 맡길려면 며느님도 기본은 알아야되지 않을까요?
    아마 몰라서일거니까 한번 일러 주심도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 부분에서 웃음이 나와 한참 웃었습니다.
    그 방법도 좋은 방법이시긴 하시네요.

    아드님 부부가 어른들 섬김을 미처 잘 몰라서이지
    착한 사람들 같으니 그냥 계시지 마시고
    너네 집에 갔다가 배곯았다는 말씀을 웃으시면서 하심도 좋으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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