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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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어제도 왔고 오늘 낮에도 왔다.
저녁에 눈길을 걸었다. 기분이 묘하다.
몇 년 만에 걸어보는 눈길이냐.
발걸음마다 뽀송뽀송 소리가 난다.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예나 지금이나 눈 온 날은 춥지 않은 법이다. 괜히 껴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데이트는 아니고 반찬가게 가는 길이다.
막상 저녁을 먹으려고 했더니 밥이 좀 모자를 것 같다.
그렇다고 새 밥을 짓기도 그렇고 무언가 곁들여 먹으면 되겠건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빵을 사다 먹을까 생각해 봤다. 빵보다는 콩고물 무친 찰떡이 낳을 것 같다.
몇 개 담지도 않고 이천 원씩이나 받다니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기다렸다가 밤 9시 반이면 반값에 세일을 할 텐데 불과 두 시간 사이에 곱절을
내야하는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먹고 싶은 생선전이나 사다 먹기로 했다.
반찬 가게는 뒷길로 한참 가야 한다.
생선전을 사러 반찬 가게에 가는 밤길이 눈으로 덮여 있어서 낭만적이다.
관리인들이 눈을 치워 길을 내고 있다.
눈이 누구에게는 노동을 선사하고, 누구에게는 낭만을 던져준다.
눈이야 한결 같지만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인다.

진열대에는 반찬도 많다.
스트로폼에 담아 투명 비닐로 감싸놓은 반찬이 어림잡아 삼십 가지는 되지 싶다.
먹고 싶은 반찬이 지천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집을 수는 없다.
한 팩에 3천원이다. 두세 가지 집고 국 한 그릇 집어 들면 만원이 넘는다.
밖에 나가 설렁탕 한 그릇 사 먹으면 7천원이면 된다.
반찬을 사다가 집에서 해 먹으면 돈이 더 든다.
이러니 반찬을 집어 들기도 무섭다.
거기에다가 반찬 량이 왜 그리 조금 담았는지 두세 적갈 집어 먹으면 그만이다.

한국은 물가가 비싸다.
생선전 하나만 달랑 집었다. 3천 원씩 주고 사다 먹었는데 오늘은 4천원이란다.
살까 말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한바탕 난투극을
벌리고 나서야 돈을 냈다.
나는 즉석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이 싫다.
결정을 내리고 나면 곧 후회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 왔다.
펴 놓고 먹어보니 맛있다.
사든 안사든 후회한다는 말은 성립 되지만, 사든 안사든 만족한다는 말은 성립이 안 된다.
결국, 후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인 모양이다.

1 Comment

  1. Won Yi

    2017년 1월 23일 at 6:32 오전

    잔잔한 이야기, 삶의 진솔함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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