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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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월요일에는 온종일 줄기차게 내렸다.
뉴스맨이 말한 그대로 잠시도 멎지 않고 내렸다.
때로는 폭우로 변해가며 쉴 새 없이 내렸다.
월요일이 프레시던트 데이 공휴일이다.
걷기 운동도 나갈 수 없어서 쇼핑센터에나 가기로 했다.

1970년대 초 쇼핑센터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최초로 문을 연 쇼핑센터가 싸우스 랜드다.
한때는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신던 신발도 벗어놓으면 팔린다고 할 정도였다.
이번에 가 보고 놀랐다.
쇼핑센터 안에 약 50여 개 상점이 들어 있는데 그중에서 2/3는 빈 가게다.
모두 장사가 안돼서 문을 닫은 상태다.

잘 사는 중산층은 고개 넘어 새집 동네로 이사 갔고, 돈 없는 서민들만 남아 있다 보니
쇼핑센터도 가난해 지고 만다. 싸구려 물건만 팔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문을 닫는다.
멕시칸들만 득실 거리는 타운에서는 하다못해 중국 국수집도 안 된다.
빈부가 극심하게 벌어진 현장을 목격하는 것 같아서 서글펐다.

화요일인 오늘은 해가 나다, 비가 오다, 왔다 갔다 한다.
찔끔찔끔 내리는 비를 미친년 오줌 싸듯 한다고 했다.
오늘 같은 날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오후 늦게 비가 뜸하기에 운동 길에 나섰다.
호수에는 물이 또다시 넘쳐난다.
계속되는 방류로 인해 지난주에 물 수위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어제 비로 다시 불어났다.
흙탕물이 턱밑까지 차서 넘실대는 게 보기에도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비 멎은 틈을 타, 한 바퀴 걷다가 거의 집에 다 와서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굴어 지면서 급기야 우박으로 변했다. 몇 십 년 만에 보는 우박이다.
얼음덩어리가 떨어진다고 손자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내가 봐도 신기한데 아이 눈에야 오죽했겠는가?
발을 동동 굴리며 신나해 한다. 행복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가 우박을 보고도 손자만큼 행복하지 못한 것은 보아도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볼 것 다 보고, 느낄 것 다 느낀 이 나이에 새로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것아, 보이는 것의 뒤에 숨어있는 깨달음만이 새로움이야”
갑자기 우박이 얼굴에 부딪친다. 따끔따끔하다.                                                                                                                          얼마나 맞은 후에야 깨달음을 얻겠느냐고 꾸짖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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