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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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속담에
‘색시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헌법재판소로 출근하는 이정미 재판관의 머리에 헤어롤이 두 개 매달린 것이
보이기에 요즈음 머리 패션은 저건가 하면서도 그럴 리가 없는데 왜일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내가 늘 저녁이면 헤어롤을 하고 자기에 저분도 그러는 모양이라는 생각도 했다.

아내도 아침이면 출근하느라고 바빠서 부엌과 방을 뛰어다닌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어도 헤어롤을 매달고 출근한 예는 없었다.
국가적 막중한 사건을 결정하는 사람과 일상생활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결정하는
사람을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느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 사건을 판결하는데 훈련된 사람이 있고, 일상생활의 판단에 단련된
사람도 있을 뿐 그 무계는 같은 것이다.
아내가 헤어롤을 매달고 출근하는 것을 보고,
어떤 남편은 오죽 바쁘면 헤어롤을 떼어놓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출근을 할까
생각할 것이고,
어떤 남편은 아내가 오죽 칠칠치 못하면 헤어롤을 매달고 출근할까 하는 남편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이냐에 달려 있다.
‘헌법밀당녀’ 애칭 얻은 이정미 재판관
결정문 낭독 초반에 계속 ‘그러나’라는 단어를 언급해 인용인지 기각인지 예측하기
어렵게 한 덕분에 ‘헌법밀당녀‘ 란 별명까지 얻었다.

오죽 급하고 중대하면 머리를 올리다 말고도 튀어나와야 했겠는가.
이정미 권한대행이 이날 아침 실수로 헤어롤을 머리에 꽂고 출근한 것에 대한
동정 어린 반응이 이어졌다.
가수 윤종신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침에 이 모습이 얼마나 짠하고 뭉클했는지,
재판관님들 그동안 고생하셨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이 아름다운 실수를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적었다.
“완전 피곤하고 오직 일만 생각했나 보다”
“정신없이 급박했던 시간이 보인다”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이 시사하는 의미는 급하고 중대하면 머리를 올리다 말고라도
튀어나와야 한다.” 감동 어린 글들이 인터넷을 메웠다.

누리꾼들은 결정문을 20여 분간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하며 파면을 선고한
이 권한대행을 ‘스타’로 치켜세웠다.
“저렇게 긴 문장을 읽으면서 한 번도 더듬지 않았다. 대단하다.”
“꼭 이번 사건을 교과서에 올려주세여. 길이 남을 명판결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최고 지위에 올랐는데 소탈해 보인다. 롤모델”
“대통령 파면한다는 저 음성을 전화벨 소리로 해야겠다.”
“오늘부터 이정미 팬클럽”
이통에 대통령 출마해도 문 후보 정도는 앞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속담도 있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까지도 밉게 보인다.’

만일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머리에 헤어롤을 매달고 국회의사당으로 기조연설을
하러 들어가는 길이었다면 누리꾼들은 뭐라고 토를 달았을까?
헤어롤 열댓 개를 매달고 나체로 의사당 연단에 선 그림을 올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은 한 순간에 다가오고,
미움이 걷히는 데는 십 년이 걸린다.

 

 

1 Comment

  1. 산고수장

    2017년 3월 15일 at 9:59 오전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저도 쓰고싶었던 글인데 아름답게 잘 쓰셨네요.
    많은분들이 읽고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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