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잘못 알고 고집부리는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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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코스코 파킹장에 주차해 있는 차량.  모두 백업으로 주차했다.  쇼핑해 온 물건을 싣기위해 차를

주차공간에서 빼놓고  싣느라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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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스코 파킹장.  모두 앞머리를 디밀고 파킹해 놓았다. 물건을 실을때 차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트렁크를 열고 실으면 된다.

 

한국에서 주차장에 가보면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해 있다.
주차 공간이 미국보다 매우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파킹을 잘도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뒤로(back up) 차를 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주차 공간에 앞머리부터 드려 미는데 비해서 한국에서는 뒤꽁무니를
드려 민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주차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차를 세웠다가 후진을 해서 주차 공간에
밀어 넣는다. 후진으로 파킹하기는 전진으로 하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했다가, 전진했다가 몇 번 들락날락하면서도 악착같이
성공시키고 만다.
한국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반듯이 후진으로 파킹한다.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나보다 하는 이상한 문화의 유산인 것 같다.
보험사 통계에 의하면 자동차사고 중에서 주차장 파킹으로 인한 사고가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접속 사고부위를 살펴보면 운전석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곳인
차후면 왼쪽 부위이다.
주차를 전진으로 하면 피할 수 있는 사고들이다.

쇼핑을 해가지고 나오면 짐을 실어야 하는데 카트를 끌고 차 뒤로 갈 만큼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가 넓지도 않다.
결국, 카트를 길에 세워두고 차 시동을 걸어 끌고 나와 차를 길에 세워놓고 짐을 싣는다.
그 바람에 뒤에 다른 차들이 밀린다.
불편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후진으로 차를 주차한다.

미국에서는 차를 파킹할 때 앞머리부터 드려 민다.
앞을 보면서 주차하기 때문에 접촉사고를 줄일 수 있다.
주차공간에 보면 후진으로 파킹하지 말라고 써 놓은 곳도 있다.
전진으로 파킹했을 때는 카트를 끌고 와서 물건을 실을 때도 파킹되어 있는 상태에서
뒤 트렁크를 열고 물건을 실으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한국에서는 왜 굳이 후진으로 파킹을 해 가지고 이중 삼중 애를
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TV 프로그램에서 ‘급발진’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마치
자동차 기계에 결함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드물게 ‘급발진 사고’라면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방영하는 횟수가 10분지 1로 줄어들었다. 거의 없다가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급발진이 많이 발생했고 지금은 발생 횟수가 줄었단 말인가?
10년 전보다 자동차가 더 많아졌으니 급발진도 늘어났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런데 왜 TV에서 급발진에 대해서 보여주지 않는가?
그만큼 한국인의 차에 대한 지식이 많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차는 기계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나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게 만들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앞으로 나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급발진이란 의미를 한국에서 잘못 해석하고 있다. 급발진은 순수하게 스타트를 빨리
한다는 말이다. 급발진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앞으로 튀어나갔다는 용어가 아니다.
지금까지 급발진으로 소송해서 승소한 사람은 없다.
왜 급발진 소송으로 대법원까지 끌고 가도 승소하지 못할까?
대기업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그렇다면 일본, 미국, 독일 차를 걸어서 한 급발진 소송은 왜 패소하는가?

이 문제는 선진국에서는 급발진이 발생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와 맞물려 있다.
미국에서도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지만,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그만 실수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고 말한다.
기계에 관한 인식과 상식이 풍부해지면 기계를 믿게 된다.
마치 전기밥솥의 버튼을 누르면 밥이 되고 누르지 않으면 밥이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듯이.

급발진이란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자동차를 후진으로 주차하면서 불편을 못 느끼고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끼어들었다고 경적을 길게 울려대면서 쫓아가는 것.
뒤따라 나오는 사람이 있어도 문을 잡아주지 않는 것.
때가 아니고 각질이니 밀지 말라고 피부과 전문의가 설명을 해줘도 믿지 않고
때라고 우기는 것.

이런 짤막한 상식들을 가지고 개선 캠페인까지 벌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보여줌으로써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오게 하면 자연스럽게 바뀌어 나간다.
오늘도 나는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서 문을 잡아주고 있다.
전에는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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