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귀신이 가져다 준 대리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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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6살입니다.
하루하루 약아지는 건지 똑똑해지는 건지 눈에 띄게 달라져 갑니다.
한번 보거나 듣고 나면 곧 익혀두었다가 다음에는 써먹습니다.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제법 머리를 굴립니다.
마른 식품을 넣어두는 팬추리에 가면 무언가 먹을 게 있기 마련입니다.
키가 작아서 높은 선반의 것은 꺼내지를 못하더니 이제는 받침을 놓고 올라서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아이 먹을 것을 다 치워놔서 실제로는 받침에 올라서서 봐야 꺼낼 것도 없습니다.
지 할머니가 씹는 재스민 껌을 맛본 다음부터는 껌을 노립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몰래 팬추리에 들어가서 껌을 꺼내 먹습니다.
달콤한 설탕 맛만 빼먹고 버리는 게 아니라 통째로 먹어 삼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먹으면 안 된다고 해도 고개만 끄덕일 뿐 번번이 삼켜버립니다.
그리고는 기회만 있으면 들락날락합니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핑크 귀신이 와서 먹었다고 합니다.
핑크 귀신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어보면 종이에다가 핑크색으로 얼굴을 그려놓고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껌을 감춰두고 빈 통만 놓아둡니다.
할머니는 속아 주는 척하고 빈 통을 흔들어 보여주면서 핑크 귀신이 다 가져 갔네
하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둘이서 서로 속이고 속고를 숨바꼭질하듯 합니다.

오늘부터는 차고에 있는 쿠키를 핑크 귀신이 먹기 시작합니다.
쿠키 하나만 먹으라고 하면 하나는 감춰 들고 하나는 먹으면서 핑크 귀신 타령을 합니다.
핑크 귀신이 집어가기 때문에 금세 없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손주 녀석은 할머니가 정말 속아 넘어가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진지하게 핑크 귀신 이야기를 해 대니 말입니다.

만만한 게 할머니가 돼서 그렇지 내게 와서는 귀신의 귀 소리도 안 합니다.
아무리 어린 손주일망정 먹힐만한 사람한테나 속이려 들지
안 먹힐 것 같은 할아버지한테는 아예 꺼낼 생각을 하지 않는 거로 봐서
의견은 멀쩡한 놈입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속이고 속아주기를 반복합니다.
아이의 행복이 곧 할머니의 행복입니다. 대리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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