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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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보는 전철 속 풍경은 이렇다.
나는 주로 출근할 사람들은 다 가고 난 뒤 한가한 오전에 전철을 탄다.
한편에 일곱 명씩 양쪽에 일렬로 마주보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시합을 하듯
몰두하고 있다. 일곱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졸고 여섯 사람이 몰두하고 있다.
미니스커트나 장발족이 유행했던 것처럼 몰두가 유행이다.

몰두 안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족속이 되고 만다.
사람이 다가가도 처다 보지도 않고 고개 숙인채로 몰두하고 있다.
양보하지 마라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불문율 같은 룰을 지키며 몰두하고 있다.
묻지 마라 답하기도 싫다.
남들이야 어떻든 몰두족은 나밖에 몰라, 몰두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무료함을 달래고 있을 것이다.
시각은 쉽게 유행에 물들어 몰두하지 않는 사람은 유행에 뒤떨어진
후진국 사람처럼 보인다.
몰두해야 하는 세상에 멍하니 앉아있다면 그건 분명 아줌마나 아저씨일 것이다.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노인임이 분명하다.

전철은 땅속을 달린다. 구태여 밖에 시선을 빼앗길 필요도 없다.
그저 몰두하고 있으면 목적지에 닿는다.
전철은 한국인이 얼마나 빨리 달려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다.
앉기가 무섭게 전철은 달리고 모두 몰두한다.
몰두가 태어나면서 모두 몰두하게 만들었다.

전철은 건대 앞을 지난다.
젊고 앳된 여자 둘이서 타자마자 노인석에 앉는다.
젊은이들은 노인 지정석을 지렁이 보듯 피해 다니기 마련인데
시치미 뚝 따고 앉는 꼴로 봐서 외국인 같다.
머리가 노래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쪽 여자 같다.
이 여자도 몰두한다. 손에 들고 드려다 보는 것이 유행이다.
둘이서 떠드는데 처음 듣는 언어다.
러시아어가 아니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언어다.
궁금증이 발동했다.
미안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왔니?
타일랜드란다. 타일랜드 사람 같지 않은데.
어느 나라 사람처럼 보이느냐고 물어 온다.
러시아인인줄 알았다고 했다.
기분이 좋은지 웃어 보인다.
정말 서구인으로 착각했다.
강남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나보다.

30도가 넘는다는 찜통더위다.
그래도 전철만 타면 시원하다.
냉장고 속보다 더 시원하다.
전철은 달린다. 쉴 새 없이 달린다.
잽싸게 몰두하는 족속들을 싣고 잽싸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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