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성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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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에 시외버스 터미널에 간다.
넓은 사거리가 텅 비었다. 걷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어제저녁에 모두 고향으로 빠져나간 모양이다.
뉴스에서 서울 빠져나가는 차량이 꼬리를 문다더니
아침에 거리에 나와 보니 알겠다. 정말 텅텅 비었다.
음식점도 커피점도 상점이란 상점은 다 닫았다.
미제 먹자 집만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열고 있구나.
버거킹, 맥도널드, 서브웨이, 스타벅스 이자들은 신났네.

거리에 사람이 없으니 피난 나간 빈 도시 같다.
나도 갈 곳이 있다. 추석날 갈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이냐.
맑은 날씨에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며 날아간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다.
빠져나갈 사람은 다 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못 나간 사람들인가?

춘천 가는 버스 타자마자 운전사가 주의를 준다.
차가 막혀 시간이 오래 걸리니 화장실 다녀올 사람은 빨리 다녀오란다.
아닌 게 아니라 고속도로에 올라섰더니 차들이 코를 맞대고 있다.
평상시 같으면 평내까지 1시간 걸리는데 오늘은 가다 서다 하면서 2시간 걸렸다.
이래서들 미리 다녀오는 모양이다.

성묘객은 별로 없었다. 묘지 숫자에 비해 겨우 5% 정도 성묘하러 와 있다.
어제 그제 다녀갔을 수도 있겠으나 실은 오래된 공동묘지가 돼서 그럴 것이다.
당장 어머니를 찾아가는데 칡넝쿨이 가로막혀 돌아돌아 겨우 당도했다.
윗집 묘에는 밤나무가 자라는지 수십 년이 지났고 아랫집 또 그 밑으로
자손들이 와 보지도 않는지 칡넝쿨이 뒤엉켜 산소는 보이지도 않는다.
찾아보지도 않을 산소는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게 낫겠다.
공동묘지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죽어서까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분명하게 갈라놓았다. 열 명이 누울 만한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누워 있는
사람이 있으니 죽었어도 꼴 보기 싫다.

이런 거 보면 미국 공동묘지가 낫다.
늘 정리정돈 돼 있고,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한 평씩만 차지하고 누워있으니
얼마나 공평한가?

“어머니 나 왔습니다. 보시기에 내가 많이 늙었지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 지난해 작은 누님 먼저 갔는데 만나 보셨지요? 머리가 하얬잖아요.
나머지 형제들도 곧 가 만나 뵙겠습니다.
알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 떠나가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술이나 한잔 더 드세요. 지금 세상에 격식은 따져서 뭐해요.
술도 흔해서 물 마시듯 해 대는데 요까짓 두 잔가지고 뭘 그러세요.
어머니 송편 좋아하시잖아요? 여기 쑥 송편도 들어보세요.
얼마 남지 않은 세월 그때까지만이라도 이웃들과 잘 지내셨으면 좋으련만,
요샌 사람들이 바빠서 와 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성묘를 다 하는 모양이에요.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 난 눈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들릴게요.
잔디가 이불인데 이불이 시원치 않아 보여 그래요.
자! 한 번 더 절 받으시고,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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