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부르는 인생은 행복한가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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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일어났다. 눈을 떠보니 7시다. 어젯밤 9시가 조금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정신없이 자다니, 근래에 보기 드문 일이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아내도 잘 잤단다.
일어나지 않고 뒤척이면서 왜 그런가 생각해 보았다.
잠이 잘 오는 심리적 현상으로 일상적인 상념이 다 사라지고 근심, 걱정 없다.
그저 순간순간이 평화로울 뿐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천국이 마치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잠이 잘 오는 과학적 현상으로는 몸 스스로 선상에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서 있을 때나
걸어갈 때, 누워있는 순간에도 몸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나도 모르게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24시간 체중의 중심을 잡으려고 무의식 속에 신경이 경계(alert)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몸을 고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관습적인 이유로는 마치 어린 아기를 잠재울 때 엄마가 안고 슬슬 흔들면서 잠을 재우면
금세 잠에 빠지는 것처럼 배가 슬슬 흔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엄마의 뱃속, 자궁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침을 먹으러 차려입고 보르도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
웨이터가 일렬로 서서 아침 인사를 해 댄다. 마치 사열대 앞을 지나가는 개선장군처럼
걸어서 웨이터의 안내를 받았다
오늘 아침 메뉴는 오므렛이 특별나다고 해서 오무렛과 베이컨 세 편과 토스트에
밀크 한 잔을 시켰다. 아침 다이닝 테이블에서 맹물처럼 맛없는 커피는 마시고 싶지 않다.
카페에서 사 마시는 커피 맛에 비할 게 못 되기 때문이다.
어름이 섞여 있는 물을 한 컵 따라 준다. 식탁 위 물 잔에 담긴 물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배가 얼마나 고요하고 잔잔하게 운행하는지 알 수 있다.
직사각형의 각진 네 곳 귀퉁이를 둥글게 처리한 선창(船窓)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유리창에 땀방울 흐르듯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마치 식탁 위의 물 담은 유리컵에서 물방울이 맺혀 흐르듯이.
창문의 1/3을 정확하게 가로질러 지평선이 황금 비율로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있다.
마치 하늘과 바다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검푸른 바다에 파도는 여전한데, 바다는 요동치고 있는데 육중한 크루즈 다이닝 테이블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걷기로 했다. 7층으로 내려가 갑판을 걸었다. 바다 냄새가 신선하고 향기롭다.
30분을 걸어도 숨이 찰 만큼 빠르게 걸어야 운동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모두 뒤뚱대며 느릿느릿 걷는다. 이리저리 앞질렀다. 내 딴에는 빨리 걷는다고 걷는데
뒤에서 “excuse me”하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조금 통통한(chubby) 여자가 귀에는 노란 이어폰을 끼고 뒷주머니에
셀폰 끝머리가 보이는 거로 봐서 음악을 들으며 걷는 모양이다. 나를 앞질러 간다.
조금은 오기가 나기도 했고, 앞서가는 여자가 흔드는 엉덩이도 볼만해서 같은 속력을 냈다.

내 속도보다 조금 빠르다. 흥에 겨운 음악이 나오는지 양손을 춤추는 형국으로 흔들며
걷는다.
한참 따라가다가 결국 포기하고 내 속도로 돌아왔다.
남들과 경쟁하듯 일렬로 서서 걷는 것도 그렇고, 남을 의식하면서 걷는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역이며 스트레스다.

지난번보다 더 많이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신선하고 흥미롭기
때문이리라.
걷는 사람 중에는 노인이 많다. 약간 중풍에 걸린 노인이 다리를 절면서 걷는가 하면
두 손을 쉴 새 없이 흔들어대는 파킨슨병에 걸린 할머니도 있다.
중국인들은 어딜 가나 티가 난다. 그들의 오성음이 억양을 조절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인들이 떠드는 소리는 멀리서도 들린다.
중국인이 영어로 떠들어도 억양의 높낮이가 자신들의 모국어를 구사할 때처럼
같은 톤인 것으로 보아 오성음을 의심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은 건강을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 같다.
걸으면서도 차를 수시로 마시는 것도 그렇고 아예 찻 병을 들고 걷는다.
얼마든지 더 걸을 수 있었지만, 내일을 생각해서 스스로 자제했다.
객실로 들어와 샤워한다.
아내가 먼저 샤워하고 어딘가로 나간 것으로 보아 다음 프로그램을 찾아간 모양이다.

크루즈 여행을 간다고 해서 특별히 산 물건은 없다.
목 짧은 등산화가 가격에 비해 괜찮은 것 같아서 샀다.
크루즈와는 상관없이 신고 다니는 목 짧은 등산화가 조금 낡았기에 샀을 뿐이다.
그러나 크루즈를 가기로 했으니 가능하면 짐을 작게 꾸리려고 흰 운동화까지 챙길
필요 없이 목 짧은 등산화로 두 몫을 담당하게 했다.
새로 산 신발에게 실력 발휘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2주가 넘는 장기간 발에 불편한 신으로 여행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다.
집에서 미리 신어보기로 했다. 운동 나갈 때마다 신고 걸었다.
한 시간을 걸어도 발바닥이 아프거나 불편한 것 같지 않다.
아무 의심 없이 새신을 신고 크루즈를 떠났다.
운동하느라고 잠깐 신는 것과 신고 생활하는 것은 다르다.
첫째 날, 둘째 날까지도 그런대로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발바닥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새신이라서 그런 것 같아 참아 보았다. 점점 더 심해진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 구두와 목 짧은 등산화뿐인데 등산화를 못 신게 된다면 낭패다.
“마누라와 신발은 헌 것이 편하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다음 날 신발 끈을 풀어 맨 윗구멍에 충분한 여유를 주고 느슨하게 맸다.

발바닥이 아픈데 발등에 매여 있는 끈이 무슨 상관이 있겠나 하면서도 그 방법 박에는 없어서

그렇게라도 해 보았다. 그리고 실험해 봤다. 한결 펀한 것 같다.
어제 온종일 투어 가이드를 따라 다니면서 관광하고 쇼핑했어도 신발에서 오는 불편은 없다.

오늘 한 시간 가깝게 속도감 있게 걸었어도 발은 멀쩡하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조그만 것 하나 신경 써서 느슨하게 풀어준 것뿐인데 이렇게 마음에 들다니.
부부 사이에도 조그만 것 하나만 느슨하게 풀어주면 매사 편안하고 마음에 들 거라는
지혜를 터득한 것 같아 기쁘다.

크루즈 230

Atrium main deck에서 기타리스트 존존이 옛노래를 불러준다. 1960년대 노래다.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듣고 있다. “You are my sunshine” “My way”
노래를 부르면서 사는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가 생각해 본다. 동화 속의 왕자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래가 생업이 되면 고달프다.
즐겁고 행복한 건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돈은 인생을 즐겁게도 해 주고 고달프게도 해 준다.

크루즈 038

저녁에는 유니버셜 극장에서 Imperial Trio(바이오린, 첼로, 피아노)가 연주하는
Classical Favorites을 들었다. 귀에 익은 피스들을 열 곡 정도 감상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의 겨울”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헝가리안 집시” 마지막으로
“헝가리안 라프소디 No2” 바이오리니스트, 첼로이스트, 피아니스트 세 분의 연주가
무대도 그렇고, 곡의 선정도 그렇고, 청중도 그렇고 상업적이라는 생각이 들자
슬퍼 보인다. 악사들이 음악을 전공하면서 음악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학성 깊은 주옥같은 단편들을 남긴 이태준 작가가 자신이 쓴 장편들은 대중소설이라고
고백한 것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슬픈 일이다.
밤의 여흥은 이어지지만 우리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1 Comment

  1. 최 수니

    2018년 4월 15일 at 10:36 오전

    크르즈 여행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내가 배타고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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