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루즈 여행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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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여행은 앉아서 쉬고, 누워서 쉬고, 서서 쉬는 게 일이다.
인터네션널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자를 대고 줄을 그어놓듯 지평선이 선명하다. 며칠째 지겹도록 지평선만 바라보았다.
바닷속은 천 길이리라. 천 길이 보이지는 않지만, 알고 있다.
망망대해에 빠지면 살아남을 사람 아무도 없다. 바다가 무섭다.
무서운 바다를 보면서 무섭지 않은 것은 땅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이
크루즈 선이 안전하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바다보다 더 무서운 것이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런 믿음을 아내에게 무한대로 주고 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내밖에 없기 때문이다.
형제도 있고 자식도 있지만, 친구도 있지만, 아내에게 비하랴.
믿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젊어서는 지겹도록 싸웠지만, 늙고 보니 그것도 다 추억이다.
밤에 사랑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조금 지나면 그것도 그리우리라.
커피 다 마신 빈 종이컵을 어디다 버릴지 몰라 들고 다닌다.
늙으면 쓰레기통마저 찾기 힘들다. 쓰레기통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바로 등 뒤에 고급스러운 작은 박스가 쓰레기통이란다.
별게 다 사람을 놀린다.

크루즈도 다 돈벌이 비즈니스다. 어떻게 하면 승객들로부터 돈을 더 뺐을까
연구가 대단하다.
막판 세일이라고 해서 가 보았다. 거지같은 티셔츠 쪼가리들을 내놓고
2개에 10달러라고 선심 쓰듯 큰 글씨로 적어놓았다.
이것저것 들춰봤지만 쓸 만한 물건 하나도 없다.
세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내가 살까 봐 겁이 난다.
아내를 찾아 헤매는 선상이 왜 이리 넓으냐.
맘에 드는 물건은 상점에 있고 상점 물건들은 영원히 세일 하지 않는다.
결국은 제값 주고 하나 사라고 일러야 할 텐데, 아내는 어디 간 거야?
어젯밤 만찬에 참석하느라고 신사복으로 차려입은 김에 사진사를 불러
둘이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사진이 없어서가 아니고, 기념으로 찍은 사진도 아니다.
장례식 때 비디오를 돌리면 크루즈 사진 한 컷 보여주려고 찍었다.
살면서 준비할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갤러리에서 그림을 경매한다고 했다. 그것도 막판 세일인 모양이다.
그림이란 그림은 다 내놓았는지 지겹도록 많다. 옵서버로 참석했다.
경매장 무대며 무대 커튼은 검은색으로 되어있다.
그림들 들고 나르는 젊은이들도 검은 옷차림에 검은 장갑을 꼈다. 검은색 일변도다.
그림만이 수려한 색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리라.
Animation art를 보여준다. 2,190달러 가치가 있다고 소개했다.
경매쟁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똑같다. 목소리를 깔고 빠른 어조로 사람을 흥분시킨다.
109번 번호를 든 여자가 75달러에 낙찰했다.
토머스 킨케이드(Thomas Kinkade)의 그림이 등장했다.
미국 쏠트레이크 태생 화가로서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화가라고 소개했다.
그림 “Lighthouse”는 2,350달러 가치가 있단다.
하지만 1,490달러로 경매에 내놨다고 소개했다. 1,470달러에 낙찰됐다.
미국의 인상파 화가 피터 맥스(Peter Max)가 소개됐다.
후손에게 물려줄 그림이라고 소품을 선보인다.
“Sun Set”이란 그림이 대학 노트만큼 작지만, 과연 아름답다. 8,900달러란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소품 2점을 더 보여 준다 도합 3점이 나란히 전시된다.
19,800달러 가치가 있다면서 오늘은 마지막 경매로 7,900달러에 주겠다고 했다.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다. 한 점 더 보태 준다. 떨이라는 식이다.
화가가 들어오는 수입은 유방암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좋은 일에 쓰일 것임을 강조한다. 협조를 구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누구나 돈에는 야박하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내 돈 아깝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큰돈을 쓰는데 깊이 생각해 보겠다는 모양이다.
눈치 빠른 경매쟁이가 얼른 한 점을 더 얹어 5점에 7,900달러란다.
소품이지만 보기에도 훌륭한 작품 같다. 내가 봐도 탐난다. 돈 있으면 사고 싶다.
그래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1점 더 주겠다며 6점을 주면서 집까지 거저 쉽핑해 주겠단다.
그림을 사면 택배는 본인 부담이다. 원래, 택배에 큰돈이 든다.
보험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쉽핑도 거저다.
이쯤 되면 나서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반응이 없다. 경매쟁이가 마무리 진다.
“예약만 하고 사든지 말든지 해도 좋다.”
경매쟁이의 간곡한 호소와 구걸에도 매장은 더없이 고요하다.
참으로 돈은 매정하고 잔인해서 피도 눈물도 없다.

1 Comment

  1. 최 수니

    2018년 5월 23일 at 12:48 오후

    크르즈에서 미술품 경매도 하는군요.

    쓰레기통 찾는 이야기
    아내에 대한 믿음.
    돈의 잔인함
    모든 내용이 참 진솔하네요.
    크르즈여행 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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