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빨간 장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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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 일산 우체국 물류지원단 담을 끼고돌아 호수로 향한다.
담을 따라 빨간 장미 넝쿨이 이어져 있다.
장미는 탐스러운 꽃송이 무게에 못 이겨 가지가 휘어질 지경이다.
온통 장미꽃으로 뒤덮인 담장이 장미정원을 방불케 한다.
매번 장미 담장을 지날 때면 눈이 호강스러워하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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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서 잉어에게 먹이 주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사람 구경하고 잉어도 구경하고.
호수에는 늘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철철 넘쳐난다.
그러나 운동 길을 따라 걷다가 알았다.
호수에 물이 거저 불어 난 게 아니라는 것을……
운동길 따라 언덕 밑으로 거대한 수로가 있다.
겨우 내내 비어 있던 수로에 물이 넘쳐흐른다.
벌써 몇 주째 쉬지 않고 밤낮으로 흐른다.
처음에는 농수로인 줄만 알았다.
어디에 거대한 농토가 있다고 이 많은 물이 쉬지 않고 매일 흐른단 말인가?
이제야 알겠다. 호수를 향해 흐른다는 것을……
가로로 어른 열 발자국 넓이에 깊이가 두 길은 된다.
물이 많이 흐르다 보니 오리가 여러 마리 날아와 앉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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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물을 뺏다가 봄이 되면 넓은 호수에 물을 채워 넣는다.
일산 호수는 인공호수가 돼서 이끼가 끼어 싸서 잠자리채로 걷어내기에 바쁘다.
호수의 잉어들은 멀리 가지 않는다.
먹이 던져주는 나무다리 밑에서만 뱅뱅 돈다.
스스로 먹이를 구하려 들지 않는다.
구해보려 해도 죽은 호수에 먹이가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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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우체국 물류지원단 담을 다시 돌아 집으로 온다.
담은 ㄷ자로 꾸부러져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담을 따라 장미꽃이 간드러지게 피어 있다.
모두 빨간 장미다. 며칠 지나다니다가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왔다.
줄기보다 꽃송이가 크고 무거워서 풀래스틱 컵에 꽂아놓으면 앞으로 꼬꾸라져 넘어진다.
유리로 된 무겁고 작은 소주잔이 어울릴 것 같아서 장미꽃 가지를 페이퍼 클립에 끼워서
세워 놓았다.
빨간 장미는 예쁘고 아름답다.
예뻐서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
그러나 미인은 단명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장미는 다음날 시들어 버렸다.
날카로운 가시에 손가락을 찔리면서 이번에는 두 송이짜리 가지를 꺾어왔다.
꽃이 하루를 못 간다. 다음날 또 꺾어 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개나리나 라일락같이 다른 꽃들은 일주일은 가는데
장미는 꺾어서 꽂아놓으면 다음 날 시들어 죽는다.
아마도 장미 스스로 금세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꺾어가지 말라고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있나 보다.
장미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온전한 아름다움과 곱고 찬란한 빛을 지닌다.
마치 부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가정이 온전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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