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나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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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기다렸다가 운동길에 나선다.
여름 해가 길어 7시가 돼서야 태양이 서산을 넘어간다.
넘어가는 햇살이 사정없이 얼굴에 와 닿는다. 선글라스를 썼음에도 눈이 부시다.
흙길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산그늘이 반쯤 덮인 호수를 스쳐지나 오는 바람이 차갑다.
바람이 차가우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지만, 후덥지근한 바람이 짜증스러운 걸 보면
신선한 바람은 차갑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모래알이 신발에 들어가 디딜 적마다 발바닥을 괴롭힌다.
할 수 없이 풀밭에 앉아 등산화를 벗었다. 손을 넣어 모래알을 찾는다.
쌀알만 한 모래가 잡혀 나온다. 잡혀온 범인은 너무나 작다.
요 작은 모래알 하나가 덩치 큰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다니 가소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작아도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으면 꼼짝 못 하고 마는구나.

언덕을 오르면서 저녁을 든든히 먹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힘에 부쳐
느릿느릿 걸었을 것이다. 걸을 기분이 아니었을 것이다.
늙으면 밥 힘으로 산다더니 운동 나가기 전에 꼭 밥부터 먹는지도 꽤 오래됐다.

운동길을 돌아 집에 거의 다 와서 코너 집 마당에 고목처럼 커버린 고욤나무가 있다.
고염 나무에 노란 고욤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
나무에서 딸 것도 없이 땅에 떨어진 고욤만 주워도 얼마든지 많다.
노란 고욤이 익어 떨어져 길에서 짓밟혀 문드러진다.
나는 맨 날 지나쳐 버렸는데, 하루는 아내가 주워 먹어보고 맛있단다. 달콤하단다.
한 주머니 주워 왔다.

그날 이후, 혼자 매일 운동길을 돌아오다가 길에 떨어진 고욤을 주워온다.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맛이 어떤지 모른다. 아내가 맛있다니까 주워올 뿐이다.
길에 떨어진 것보다 집 울타리 안쪽에 더 많이 떨어져 있다.
말이 울타리지 실제로 울타리는 없고 다만 경계가 울안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고염이 울안에는 많이 떨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남의 집 울안에 들어가 주울 수는 없다.
길에 떨어진 고욤만 주워도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은 된다.
모자를 벗어 모자에 열댓 알씩 주워온다.
어느 날은 몇 알 안 된다.
늘 고욤을 줍다가 알았다. 바람이 부는 날은 많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무엇이든지 오래 해야 알게 된다.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안다.
아내와 오래 살다 보니 알만하다. 싫어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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