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배달된 택배

운동길 010

저녁 늦게 동네를 걷다가 인도교와 도로변 사이 물 흐르는 고랑으로 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물은 네모난 철 뚜껑을 뒤집어쓰고 있는 수 체 구명으로 사라진다.
수챗구멍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도 요란하다.
계속된 여름 가뭄에 물이 넘쳐흐르다니 필경 어느 집 앞마당 잔디밭에 스프링클러를
틀어놓고 깜박한 것이라고 직감했다.

살면서 나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알고 있다.
스프링클러를 틀어놓고 깜박하기가 일수다.
앞마당에 물을 틀어놓고 10분만 있다가 꺼야지 하고 안으로 들어가 TV를 보다 보면
그만 수돗물을 틀었는지 깜박하고 만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밖에 나가보면 스프링클러가 그냥 틀어 있어서 물이 분수처럼 잔디밭을
흘러넘친다.
“아! 이일을 어쩌나?” 부리나케 물을 잠그지만 이미 물을 밤새도록 흘러내렸다.
자그마치 10시간도 넘게 수돗물을 틀어놓고 깜박 잊고 잠잤던 것이다.
잊어버리고 밤새도록 물을 틀어놓고 자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나 나는 이웃이 괘씸하다. 누군가는 밤늦게 물이 틀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알려 주는 사람이 없다. 참 야속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흐르는 물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앞마당 잔디밭에 스프링클러를 틀어놓았다.
잔디밭으로 물이 흘러 넘친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물이 흘렀을까?
나는 망설였다. 주인에게 말해 줄까 말까하고.
말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돌 벨을 눌렀다.
모르는 집 돌 벨을 눌러놓고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계면쩍어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 노동자 같은 차림의 주인이 문을 연다.
문이 열리자마자 잔디밭에 물이 틀려 있다고 알려 줬다.
그때서야 주인은 놀라면서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급했다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걸어오면서 잘 말해 줬다는 생각이 든다.
참견이 아니라 도움을 줬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오늘은 운동하고 돌아와 보니 대문 앞에 택배 박스가 놓여있다.
택배기사가 돌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으니까 문 앞에 놓고 간 것이리라.
박스를 들고 누구에게 온 무엇일까 하고 주소를 확인했다.
우리집 주소가 아니다. 가만히 봤더니 앞집 주소다. 박스를 잘못 놓고 간 것이다.
친절을 발휘하고 싶어서 앞집에 들고 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친절하게 택배가 잘못 배달되었노라고 말해 주려고 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앞집 문 앞에도 커다란 택배 봉투가 놓여있다.
그리고 봉투에는 지펜으로 ‘잘못 배달되었음(Wrong address)’이라고 큰 글씨로 쓰여 있다.
직감적으로 이 집 누군가가 써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택배기사더러 집어다가 제대로 배달하라는 메시지가 숨겨 있다.
혹시나 해서 봉투의 주소를 읽어봤다. 우리집으로 배달되어야 했을 물건이다.
택배 기사가 깜박하고 바꿔놓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돌 벨을 누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박스를 문 앞에 놓고 우리집 봉투를 들고 돌아섰다.
내가 박스를 들고 가서 맞바꾼 일은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앞집에서 ‘잘못 배달되었음’이라고 써서 문 앞에 내놓은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앞집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 일까?

택배만이 아니다. 종종 옆집 우편물이 우리 우체통에 들어와 있는 예도 흔히 발생한다.
나는 당연히 우편물을 옆집 우편 박스에 넣어준다.
그러나 옆집은 우리집 우편물이 잘못 들어와 있으면 배달원이 다시 집어 가게
우체통 위에 올려놓는다.
내가 직접 배달하는 것과 우편배달부가 배달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만일의 경우 우편물이 분실되었을 경우 책임문제가 발생한다면 책임소재를 가리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아직도 한국식 사고가 남아 있어서 책임소재에 관해서 불분명하다.
그래도 그렇지 앞집 옆집에 살면서, 얼굴 마주치면 늘 인사하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정 머리 떨어지는 미국 생활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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