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친구 진국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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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다 보니 세상 바뀌는 속도도 맞추지 못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TV하고 라디오 그리고 전화밖에 없었다.
TV나 라디오, 전화는 아무런 조작 없이 그냥 틀기만 하면 된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다. 거저먹기다.
그러나 인터넷이 탄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 갔다.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기능이 생겨나고 기능에 기능이 진화하면서 정보도 많이,
빨리 보급되다 보니 얼마나 빨리 따라잡느냐, 얼마나 많은 기능을 조작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을 똑똑하게도 만들고 리더로 뽑기도 한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을 보면 그런대로 대충 인터넷 시대를 따라가면서 살아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배우려 들지 않는 친구도 있다.
배우지 않으려 드는 친구는 인터넷이란 자체를 무시하면서 인터넷 없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 없다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는 관심이 있으면서도 없는 척하면서 시침을 떼고 산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세월 따라 인터넷이 대세를 이루면서 지금은 인터넷 없이는
아무런 일도 못 보게 생겼다. 관공서에 가도 인터넷으로 기록, 답변해야 하고
인터넷에 입력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인터넷에 맞게 찍어 넣지 않으면 한 발짝도
진전이 안 된다. 이쯤 되면 고집부리던 친구도 깨달을 때가 되었건만,
그래도 외면하며 산다.
한글 모르는 사람들이 일상 업무를 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듯이,
인터넷 모르는 삶 역시 남에게 의존함은 물론이려니와 자신의 모든 정보를
노출시키며 살아야 한다. 하물며 들어내 놓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들통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엊그제 누님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다.
“이젠 피 뽑는데도 도와주는 리셉션이스트도 없더라?
알아서 두들겨 넣어야 쪽지가 나와 들고 가야 해.“

배우고 나면 인터넷은 신통방통한 괴물이다.
문서를 시대별로 아니면 장르별로 구분해서 검색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이 쓴 글의
철자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렸는지 맞았는지도 컴퓨터가 다 점검해 준다.
심지어 장문의 글을 써놓고 ‘나는’이라는 단어만 제거해 달라면 그렇게 해 주기도 한다.
인터넷 기능만 다 터득하면, 아니 스마트폰 기능만 다 알면 사람 똑똑해 지는 건 시간문제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스마트폰의 진화도 무섭게 탈바꿈 해 나가는 바람에 겁난다.
이젠 전화만 가지고 모든 업무를 처리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낮 전화기 가지고 게임이나 하는 장난쯤으로 여기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카톡이란 기능으로 국제 전화며 문자소통이 거저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일전에 아들이 갤럭시 s6 새 버전으로 바꿔줬다.
내가 쓰던 갤럭시2에 비하면 성능이 훨씬 좋다. 카메라 화질 좋은 게 제일 마음에 든다.
참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
전화기의 여러 기능을 모르는 친구는 애써 무시하고 부인하려 들지만, 기능을 모르는 만큼
손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고집을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엊그제 cell 폰도 없이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고집 그만 부리고 스마트폰이나
장만하라고 소리쳐 주었다.

유교사상이 깊숙이 잠재해 있는 마당에 부인이나 자식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기에는
체면 깎기는 기분일 것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더욱 실행하기 힘들고 아버지라는 입장에서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난처한 때도 있다.
전통적으로 어른이 아이에게 가르쳐 주던 시대에서 살아온 나이 든 세대로서
거꾸로 아이에게서 어른이 배워야 한다는 사실은 차마 모르고 지내면 지냈지
체면 구기기 싫은 거다.
싫건 좋건 세상은 바뀌어서 자식에게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안 배우면 바보가 되고 그나마 배우면 현상유지는 된다.
배우는 것도 처음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몇 번 치르고 나면 그런대로 괜찮기 마련이다.
나는 실용주의여서 일찌감치 아들딸에게 물어 배워오기는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것만도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쳐 줄 때는 마음 자세부터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꼼꼼히,
철저히 알아들을 때까지 가르쳐 준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를 가르쳐 줄 때는 없는 시간 내서 가르쳐 준다는 티를 역력하게 낸다.

이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타박하기도 한다. 치사하다는 마음이 들 정도다.
배우는 요령도 진화해서 나는 내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
아내더러 아들에게 물어보고 알아낸 다음 나는 아내에게서 배운다.
맞부딪치는 것보다 한 번 걸러서 배우면 훨씬 낫다.

길 것 배우고 나면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싸서
보조 맞추기도 어렵다.
똑똑해 지기는커녕 현상 유지만 하기에도 벅찬 세상에 겨우겨우 따라가다가
결국엔 한 번도 똑똑해지지 못하고 세상 떠날 것 같다.
죽을 때도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면서 죽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관속에 내가 쓰던 스마트폰을 넣어달라고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들고 가서 누구한테 배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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