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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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꽃

추석인데 어디론가 나들이 다니느라고 바삐들 오간다.
갈 때 봐도, 올 때 봐도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에 차가 줄지어 서 있다.
젊은이들은 가나오나 커피만 마시나 보다. 그것도 값비싼 스타벅스 커피로.
경춘로 평내 도로변에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나란히 있다.
추석 명절이랍시고 다른 음식점들을 문을 닫았는데 커피점과 햄버거 점은 성업 중이다.
대목을 만난 듯 손님이 북적인다.
버스 타고 성묘하러 평내에 갔다. 가는데 한 시간, 오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기다리다가 지친 할머니 운전사에게 화를 내며 소리 지른다.
“왜 2시 차를 빼 먹고 3시 차가 오는 겨?”
“빼먹은 게 아니라, 가평에서 대성리 구간이 막혀서 그래요. 나도 빨리 가서 쉬면 좋지요.”
“명절 때면 버스를 타절 말아야지, 기다리다 죽갔어…….”
사패산 터널을 빠져 나오는데도 1시간이 걸렸다.

반세기도 훨씬 넘어 아주 오래된 공동묘지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멀리 까마귀 지저귀는 소리만 들린다.
뚜렷한 길도 없는 공동묘지에 칡넝쿨이 철조망처럼 엉클어져 헤치고 갈 수도 없다.
그러니까 30년 전에 어떤 군 고급장교가 사병들을 시켜 벌초하던 묘역, 부모의 묘역이었겠지,
넓게 자리 잡아 연못까지 만들어 놓고 몇 대에 걸쳐 묻히려던 묘역이 지금은 폐허가 되어
빈터로 남아 있다. 칡넝쿨로 연못이 덮여 연못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조차 없다.
불과 몇 십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인 주제에 대대손손 묻히기를
바라다니…….
산 메뚜기만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추석이라고 아무도 없는 공동묘지에 나 홀로 서 있다.
죽어도 애석하거나 슬프지 않은 나이가 되었건만,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찾아간다.
사랑에는 생성과 소멸이 있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사랑은 예외인 모양이다.
묘지 뒤로 말라비틀어진 밤송이만 수북이 쌓여있다.
밤송이는 입을 딱 벌인 체 도토리만한 밤톨을 물고 있다.
어머니 바로 윗묘는 돌보는 후손이 없어서 버려진 묘다.
야생 밤나무가 거기에 뿌리를 박고 자란지도 반세기나 되었다.
매년, 밤이 무수히 떨어진다. 여기는 다람쥐도 없는지 밤알이 널브러져 있다.
오늘은 작심하고 검정 비닐봉지에 몇 알 집어 담았다.
작기가 도토리만 해서 먹을 게 없어 보이는 밤톨을.
밤나무 때문에 청소해 내기만 힘들다.

어젯밤 떡집에 들러 가장 작고 가장 싼 송편 8개 들이 팩을 3000원 주고 샀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송편값을 비싸게 받는다.
묘역 풀밭에 앉아 먹는 송편 맛이 끔찍이도 좋다.
제법 송편 속에 팥이며 깨, 콩도 들어 있다. 분홍색과 보라색에 쑥떡도 있다.
설탕을 넣어 달착지근하다.
옛날 송편은 설탕 없이 만들어 담백한 맛이었는데 설탕에 중독된 지금 사람들이
어찌 그 맛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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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걸으며 농작물들을 만난다.
깨밭에 깨 줄기가 내 키만큼씩 크다. 고추 줄기도 내 허리를 훌쩍 넘는다.
깨알도 크고 고추도 길고 크다.
오래간만에 수세미 꽃도 보았다. 들녘에 노란 꽃이 흔들어지게 피어있다.
지천으로 널려 있던 고추잠자리, 메뚜기 나비가 귀하다.
귀한 나비가 날아든다. 나비는 보잘것없이 작다.
옛날 나비에 비해서 턱없이 작아졌다.
모처럼 만난 나비는 몸집이 왜소하고 볼품없어서 실망스럽다.
호랑나비, 왕잠자리, 방아깨비, 오줌싸개 다 어디로 갔나?
농작물이 분수없이 크다 했더니, 제 입맛에 맞는 비료만 잔뜩 먹고 홀로 큰 모양이다.
제 몸집 불리느라고 이웃이 굶어 죽는 것도 모르는 재벌 같다.
가을 날씨가 선선하고 시원해서 좋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 맑은 태양 빛으로 꽉 차 있다.
맑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
들녘에 누런 벼이삭이 풍성하다.
내 것이 아닌데도 마음 뿌듯하고 행복하다.
가을바람이 슬렁슬렁 불어와 이마의 더운 기운을 걷어간다.
가을은 농부가 아니어도 행복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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