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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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를 끓여 먹고 나올 걸 거리에 나와 보니 배가 출출하다.

가다가 홈플러스에 들러 잔치국수를 먹었다.

홈플러스에 드나들 때마다 거짓 광고 스탠드 푯말이 눈에 거슬린다.

머리 뿌리까지 염색해 준단다.

머리 뿌리를 어떻게 염색하겠다는 건지,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벌써 수개월째 세워놓은 거로 보아 믿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돈 처들여 광고 하겠지?

홈플러스 안에 국수를 즉석에서 삶아 주는 스탠드가 있다.

여러 음식 중에 잔치국수가 3000원으로 가장 싸다.

더 맛있어 보이는 비빔국수, 김치우동, 어묵우동도 있지만 가격이 4500원이다.

내게는 가격이 싸고 단무지가 곁들여 나오는 잔치국수가 만만해 보인다.

잔치국수랍시고 두어 젓갈만 집으면 거덜이 날만큼 적게 준다.

국수가 많지 않아 먹고 나도 배가 가벼워서 좋다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주문할 때 단무지를 많이 달라고 한 마디 건너 놓으면 보통 3조각 주는 단무지를 6조각 준다.

단무지는 비닐봉지에 싸 들고 와 저녁 반찬으로 먹는다.

 

이 층 교보문고로 올라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책을 집어 들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읽는다.

어느 책방이나 가보면 젊은이들은 책은 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 읽고 간다.

옛날에는 책방에 서서 읽었는데 지금은 신사적으로 아예 앉아 읽을 자리를 마련해 놨다.

나도 젊은이들 흉내를 낸다. 책 들고 빈자리에 앉았다.

젊은이들은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책방에서 편안하게 앉아 책 읽을 자리를 제공하는 까닭은 책방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수를 사 마시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음료수 한잔에 4500원이니 두세 번 마시면 책값과 같은 돈이다.

나만 맨숭맨숭 앉아서 책만 읽기에는 미안한 감도 든다.

책 앞부분 맛보기만 읽고 책을 사는 게 아니다. 책은 사지 않고 읽기만 한다.

돋보기를 끼고 30여 분 읽었다. 눈이 아물아물하다.

이때쯤이면 책을 덮어 제자리에 갖다 놓고 나온다.

이어서 내일 또 읽으면 된다. 이삼일 오가면 한권 다 읽을 것이다.

나도 배웠다. 돈 안 쓰고 책 읽는 방법을.

사실 동화처럼 간단하게 쓴 책은 돈 주고 사기에는 어딘가 뻥뻥하다.

그 자리에서 다 읽어도 될 것 같다.

젊은이들도 다 그럴 만해서 그러는 거다.

 

백석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강준만 교수의 생각과 착각’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란 책을 찾았으나

전자는 대출 나가고 없단다.

마두 도서관에는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마두 도서관엘 갔다.

내일부터 추석 연후 문을 닫는다고 해서 오늘은 꼭 빌려야 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본다.

강준만 교수는 <죽기 살기로 돈을 번다거나, 모은다는 것. 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

이게 다 한국인 의식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6.25 심성이라고 한국인 코드’>에 썼다.

 

내가 작은 것에 발발 떠는 까닭도 ‘6.25 심성의 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했던 시절을 겪어온 나로서는 아끼지 않으면 곧 굶는다는 강박관념이

무의식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굶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인간의 마지막 슬픔이 배고픔이라는 사실을.

내게서 이런 ‘6.25 심성이란 감정을 따로 떼어놓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돈 안 쓰고 발발 떨고 사는 사람들도 특별히 그만이 펑펑 쓰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아까운줄 모르고 쓰는 게 어디냐 일뿐, 결국 그도 돈을 쓰면서 사는 것은 매 한가지다.

 

어쨌거나 사람은 저 좋은 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사는 거다.

자기 생각이 맞는 건지 아니면 착각인지도 모르면서.

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게 맞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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