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버리기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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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사는 막내동서가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갔다.
30년도 더 전, 신혼 때 우리 집에서 기거했던 일이 있던 터라 추억이 새로울 거다.
TV를 보면서 이야기하다가
“형님, 저 책들은 버려야 하지 않아요?” 하고 묻는다.
“버려야지.” 대답은 간단하게 했지만 실은 나도 고민이다.
년 전에 일산 알라딘 헌책방에 가서 책을 팔아본 경험을 말해 주었다.
내가 한 권에 천 원씩에 팔았다는 말을 듣고 막내동서가 깔깔대고 웃는다.
그게 몇 푼 된다고 그 무거운 거를 들고 가느냐는 거다.
경제적 논리에서 말하면 막내동서 말이 맞다.

그러나 읽지도 않는 책, 책꽂이에 꽂아놓고 썩혀버리면 뭐하나?
나는 책꽂이의 헌책을 볼 때마다 심리적 만족감에 취해서 진취적인 생각이 막혀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냐고 나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새 책은 비싸서 사지 못하고 혹시 알라딘에 헌책은 있으려나 들춰보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만나기라도 하면 무척 반가웠던 경험을 말해 주었다.
막내동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다 쓰고 나면 다음부터는 종이컵으로 바꾸겠단다.
친환경에 조금이나마 협조하겠다는 의미에서 그러겠단다.

한국에서 지내다가 월요일 아침, 중고 책 7권을 들고 일산 알라딘을 찾아갔다.
팔겠다고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중고서적이라고 해서 아무 헌 책이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 2-3년 사이에 출판된 책이나 유명인의 책이어야 환영한다.
먼저 ‘중고 상품 매입 여부‘를 검색해서 미리 매입 가능한 책으로 고른 다음
가격을 점검했다.
학교 교재나 전문 서적은 가격을 꽤 쳐준다.

카운터 아가씨는 책갈피를 빠른 속도로 후르르 넘긴다.
잽싸게 낙서와 밑줄 그은 걸 찾아낸다.
전문가의 눈이 다르긴 다르다. 금세 이건 최상품, 상품, 중품으로 구분해 놓는다.
나는 7권 모두 최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상 그리고 둘은 중이라고 적는다.
중이라고 적은 책 중에서 ‘라캉의 주체’는 새 책이 분명한데 왜 중이라고 하는지
물어보았다. 중고라고 하면 억울했다. 자그마치 가격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최상은 7200원, 상은 6400원, 중은 5700원이다.
아가씨는 책갈피를 흐르르 넘기면서 연필로 체크해 놓은 부분을 가리킨다.
내가 읽으면서 군데, 군데 연필로 가로를 쳐놓았지만 흐리게 체크했다.
그렇다고 중고라고 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 책 하나만큼은 도로 들고 왔다.
다른 책들은 볼펜으로 줄을 그어놓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들고 와 지우개로 조금만 지워도 금세 사라진다. 다시 깨끗한 새 책이 되었다.
며칠 후에 다른 책들과 함께 들고 가 최상이란 판정을 받고 싶다.
어떤 책은 알라딘에서 중고 책을 샀던 것인데 도로 가지고 가 파는 책도 있고
최근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엊그제 새 책을 사서 읽고
곧바로 팔았다.
12500원에 사서 읽고 6900원 받고 팔았다.

그 후에도 두세 번 더 다녀왔다.
책이라는 건 만나야 할 주인을 만나야 빛을 발한다.
아무쪼록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 요긴하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1 Comment

  1. 비풍초

    2018년 11월 4일 at 10:16 오후

    제게도 있는 책이 있군요. 유배지에서… 하고 현대시작법인데.. 전자는 낙서를 좀 해서 가치가 없을게고.. 후자는 내가 왜 샀는지 모르겠는 책이어서 아주 깨끗한데.. 저도 찾아보니 깨끗한 책들이 몇권 있군요.. 아들아이가 대입 공부용 책으로 샀던 것들은 아들애가 사서 전혀 읽은 적 없는 것 같은 것도 있군요.. 왕복 차비는 나와야할텐데 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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