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호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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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호수로 가는 길은 황량하기만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치 푸르고 싱싱하던 나무 잎이 다 떨어져 수북이 쌓였다.
낙엽이 싸이면 싸인 대로 아름답다.
길을 걸을 때마다 서걱서걱 낙엽 밟히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낙엽 밟히는 소리도 한줄기 악기소리처럼 들린다.
겨울이라고 해도 춥지 않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제법 덥다.
바람 한 점 없이 햇볕 따뜻한 날, 걷기에 딱 좋은 날이다.
나는 이런 날, 이런 길을 좋아한다.
자연스러운 흙길에 울퉁불퉁한 지면이 발바닥을 괴롭히는 길.
아무도 없어 조용하고 쓸쓸하지만 자연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길.
‘열정의 소멸’도 질병이라고 했는데, 사색하며 걸기만 해도 질병이 치유되는 길.
나는 해 맑은 날, 이런 길 걷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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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가로질러 놓은 나무다리가 있다. 팻말에 ‘애수교’라고 적어놓았다.
‘애수교(哀愁橋)’ 슬픔과 시름이 곁든 다리라는 뜻이다.
애수 하면 ‘애수의 소야곡’이 떠오른다. 남인수라고 하는 가수가 불러 대 히트를 쳤던 노래.
나의 어머니 세대를 울렸던 노래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은”
내가 따라 불렀던 노래는 아니지만 하도 많이 들어서 저절로 외운 노래다.
피뜩 가사만 들어봐도 그때 애태우던 여인들의 속마음이 보인다.

애수교 중간에 서면 물밑에 잉어가 많았다.
지난 봄 그 많던 잉어는 어디로 갔는지 오늘은 한 마리도 없다.
노랑, 빨강, 흰색 그리고 검푸른색 잉어가 득실거렸는데.
어떤 녀석은 굵기가 어른 허벅지만 했다.

호수가 살짝 얼어 있지만 그렇다고 잉어가 살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나 어렸을 때 창경궁 연못에도 잉어가 많았다.
그때는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크기는 엄청 컸다.
겨울에 호수가 꽁꽁 얼어도 잉어는 얼음 밑에서 겨울을 낮다.
지금 일산 호수는 인공 호수여서 물이 죽어있어 잉어의 자연산 먹이가 없나보다.
겨울철엔 따뜻한 곳에 가둬두고 먹이를 주는 것 같다.

한 바퀴 걷다가 왔더니 잠이 온다.
예전에 장인어른이 지금 내 나이였을 때다. 오후엔 꼭 낮잠을 주무셨다.
저렇게 낮잠을 주무시고 나면 밤엔 어떻게 주무시려고 그러나 했었다.
난 한창 젊은 때라 낮잠이 와도 쫒아버렸다.
낮에 잠을 자고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랬다.
내가 늙고 보니 낮에 잠이 저절로 쏟아진다. 낮잠을 자고나도 밤에 또 잔다.
늙으면 잠이 많아진다.
참 흐르는 세월은 빨라 내가 장인어른이 하시던 대로 하고 있다.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감사 카드가 오고가고 선물을 주고받는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로 상징 되고 싼타는 선물을 일컷는다.
모르는 이에게 보내는 선물이 가장 큰 선물이리라.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용서나 화해라는 선물일 것이다.
“죽어도 용서 못해”처럼 굳건한 각오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대단한 선물이다.
화해와 평화가 깃든 크리스마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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