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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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얼굴(Baecelona’s Face)’
러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작품. 미국의 팝가수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여자 얼굴을 형상화한 조각으로 만화적 기법으로 유머가 있다.
바르셀로나의 5대 거리 조각물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여인의 얼굴이다.
가우디의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으로 가우디의 장점인 써라믹으로 만들었다.
여인의 붉은 입술과 웃음은 바르셀로나 항구에 온 것을 환영하는 모습니다.
2019년 새해를 맞아 관광을 꿈꾼다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추천하고 싶다.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것,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유럽을 관광하고 싶다하면 우선 파리, 로마, 런던이 머리에 떠오른다.
최근에 혜성처럼 유행하는 곳이 있으니 스페인의 서부도시 바르셀로나이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밀려와서 이제 그만 할 정도로 아우성치는 곳이다.
대한항공도 아시아나도 직항로를 개설해 놓고 한국인을 실어 나른다.
건축에 대해 문예한인 내가 보기에도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이는데 하물며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안토니 가우디의 세계를 바라본다면 얼마나 놀랍고 신선하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가우디의 작품을 찾아온다. 유럽과 미국의 관광객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가장 열렬한 팬들은 일본에서 온다. 극동에서 온 사람들은 환상적인 형태와
색채에 매료된다. 가우디의 자연주의가 이들 문화의 도교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일본인들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가우디의 자연 사랑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세속적인 이유로는 일본 위스키 브랜드 ‘산토리’의 70년대 광고를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서 위스키를 팔려면 유럽의 이미지가 필요했다. 위스키의 원산지에 관한 이미지를
전달해야 했는데 스코틀랜드든 바로셀로나든 로마든 상관없었다. 유럽의 이미지가 가장
강열한 곳이 어디일까 찾다가 바르셀로나로 결정 했다.
지금도 일본 여행사들이 자국민에게 흔히 받는 요청이 있는데 “위스키 광고에 나온 곳에
가 보고 싶어요” “어딘지는 모르지만 거기 갈래요”하는 부탁이다.
광고에 나온 곳은 가우디의 대표적인 후기 건축물 중 하나인 구엘 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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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 동화 같은 공원과 뼈로 된 집 그리고 놀이동산 같은 대성당을
선사했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바르셀로나는 예전부터 건축의 도시였다.
가우디는 그 정점이다.
그에게는 누구라도 꿈을 꾸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다. 가우디는 건축을 동화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는 색채와 형태 및 재료 사용에 있어 천재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최악의 안목을 가진 광신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의 미완성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놀이공원과 잘 어울려 보인다.
피카소는 코웃음을 쳤다. ‘세계에서 가장 꼴사나운 건물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모이는 바르셀로나의 상징이다.
가우디는 자신의 작품에 비해 훨씬 덜 알려져 있다.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다. 문화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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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이야기는 스페인 북부 타라고나 지방의 작은 도시 리우돔스에서 시작된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본래 자부심이 강하다. 그 중에 리우돔스 사람들은 가우디와
동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다른 도시 벨리젠 레우스는 리우돔스보다 훨씬 큰 도시로 가우디가 세례를 받은 곳이다.
이곳사람들은 가우디가 레우스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전기 작가 사비애로 서스트는 레우스와 리우돔스 둘 다 가우디가 자기네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우긴다.
리우돔스의 한 주민은 이는 논쟁거리가 못 된다고 설명한다.
리우돔스 시청에는 안토니 가우디는 150년 전 리우돔스의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산파였던 제 증조할머니가 가우디를 직접 받으셨으니까요”
하고 말한다.
‘마스 데 라 칼데레라‘라고 불리는 이 집은 리우돔스 끝자락에 있는 호젓한 곳이다.
가우디의 아버지는 여기서 구리 세공 일을 했고 가우디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지켜보거나
돕고는 했다. 아버지의 공방에서 구리를 세공했다.
복원 전문가 루이스 게일버트의 말이다.
“건축과 공간의 3차원적 원리를 배워 나갔죠. 건축 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걸 배웠어요.”
가우디는 평화롭고 전원적인 환경이 필요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이른 나이에
류머티스에 걸렸다. 어린 시절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류머티즘 때문에 무릎이 안 좋았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쪽이 치솟기 마련이다. 걸을 수 없는 가우디는 훌륭한 관찰력을 갖게 됐다.
자연을 보는 눈이 남달랐다. 그 관찰력은 가우디가 그린 초기의 그림에도 드러난다.
주변의 자연들을 묘사한 그림이 많다.

가우디가 레우스의 학교에 다닐 만큼 건강이 회복됐을 때 그가 받은 교육은 신앙과 수학이
전부였다. 건강이 좋을 때면 두 친구와 20km 떨어진 포블레트의 시토회 수도원을
찾아가고는 했다.
여기서 세 소년은 낭만적인 맹세를 한다. 이 거대한 수도원을 자기들 힘으로 복원해 보자는
엉뚱한 결의를 나눈다. 14살짜리 아이에게는 불가능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일화를 통해 가우디가 어릴 때부터 불가능을 용납하지 않는 야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수도원은 재건됐고 건축 비용 모금에는 가우디의 친구들 공이 컸다.

1 Comment

  1. 김 수남

    2019년 1월 9일 at 2:46 오전

    선생님! 스페인 바로셀로나가 더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옵니다.감사합니다.가우디도 그렇고요.귀한 글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새해도 더욱 건강하시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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