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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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라고 아침에 캐나다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특별히 무슨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해 아침이니까 인사차 하는 거다.
와이프 살아 있을 때는 전화 한번 없더니 지금은 적적해서 그런지 뻔 찔 전화다.
90이 다 된 외사촌누님도 떡국은 먹었느냐며 카톡으로 전한다.
아침에 딸네 집에서 만둣국을 먹자니 만둣국 좋아하는 동생이 생각나서 보내는 거란다.

만둣국 이야기가 나오니까, 친구는 만둣국이 지겹다면서 하소연한다.
소고기를 뼈다귀체로 고아놓고 만둣국 40인분을 끊였단다.
“아니, 너 혼자 살면서 미쳤니? 그렇게 많이 끓이게?”
“교회 사람들 다 불러다가 먹였어.”
“그 많은 만두는 누가 다 빚고? 교회 여자들더러 와서 좀 빚으라고 하지 그랬니?”
“야, 와서들 떠드는 거 귀찮아, 내가 다 빚었어.”
“너 정신 나갔구나, 너네 교회는 만둣국 대접하는 교인이 너 박에 없니?
다 늙은 홀아비더러 끓이라고 하게?“
“내가 대접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뭐, 먹고 남은 건 다 싸가라고 했어.”
캐나다 친구는 이런 사람이다. 하면서
“여기저기 새해 인사차 전화를 걸어줬는데 나한테 전화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야.“
나 들어보라는 소리 같아 찔끔했다.
“지금 세상에 남의 시간 빼앗아가면서 전화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니,
너처럼 Old Timer나 전화할까?”
친구가 구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현시대에서
너무 동떨어져서 산다.
본인도 내 말이 듣기 싫은지 카톡 할 시간도 없이 바쁘단다. 카톡이 40통이나 밀려 있는데
열어보지도 않았단다. 열어보면 일일이 답해주기 싫어서 열지 않는 거란다.
정말 그런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으나 카톡 없이는 소통이 안 되는 세상이 아니더냐.

10년도 넘게 가보지 않은 오산 시골에 사는 친구네 마을에 친구 집만 빼놓고
공장인지 회사인지로 둘러싸여 있다. 온통 빌딩이 들어섰다. 이제는 더 이상 시골이 아니다.
친구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니 마을의 변화를 소상히 알겠다.
앞마당 밭에다가 대추 농사를 짓는데 대추나무가 어른 키 박에 안 된다.
키가 크지 못하게 세팅해 줘서 땅딸 맞은 대추나무에 대추만 많이 달린단다.
안채는 그냥 두고 사랑채는 양옥으로 고쳤다. 대문 앞에 차고까지 지었으니
지금 내가 친구네 집에 간다고 해도 제대로 찾을지, 어떨지 헷갈릴 것 같다.
이게 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니 나의 기억이 업그레이드되어 입력되고 있다.
심지어 사랑 고백도 카톡으로 하고, 결혼 프러포즈도 카톡으로 한다고 하지 않더냐.

엉뚱하게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동창은 카톡을 하면서 소상히 소통하고 지내는데
오히려 친했던 친구는 생목소리로만 소통을 강요하니까 소원해지는 기분이다.
젊은 사람들처럼 문명의 기기에 목매고 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현상유지 정도는
하면서 살아야 본전은 건지지 않겠나.
90이 다 된 외사촌누님을 보면서 사람이 자신감만 있다면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는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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