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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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을 부를 때 친(親) 자를 앞에 붙인다.
친구, 친척, 친지, 친정 친자가 붙으면 이건 허물없이 통하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친자보다 더 친한 사람을 식구라고 부른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다. 식구는 가정의 멤버를 일컫는다.
부모와 자식 내지는 삼촌과 처남도 식구에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
꼭 가족이어야만 식구가 되는 것만도 아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같이 지내면서 같은 밥솥의 밥을 먹는다면 식구가 된다.
식구는 숫자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같이 군대생활을 하면서 같은 밥을 먹는다는 의미로 식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운동선수 멤버나 같은 동호인들 내지는 복지회관 노인들이 같이 밥을 먹음으로써
한 식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밥은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중요한 친교의 매개체가 된다.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같이 하면 친해지고 연대감이 생긴다.
연대감만 생기는 게 아니라 신뢰감과 협동정신도 생긴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그냥 단순한 밥이 아니라 끈끈한 정과 힘을 같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데 밥만 한 매개체가 없다.

기억력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어느 계기가 되면 되살아나 의식을 회복한다.
입맛도 유행 따라 변해가다가도 옛것을 만나면 불현듯 떠올라 기억을 살려 놓는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준다.

늙으면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실감 나는 나이가 되면서 진정한 밥맛을 알 것 같다.
젊어서는 한 끼, 두 끼 굶어도 견딜 만했다. 매가리가 없어서 비실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늙어서 한 끼라도 밥을 굶으면 자리에 누워야지 앉아있을 힘조차 없다.
과연 밥심이 무섭긴 무섭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주 먹세가 대단하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어른보다 더 먹으면 먹었지 뒤지지 않는다.
몇 달 안 보다가 보면 눈에 띄게 커져있다.
과연 먹세가 무섭긴 무섭다.

자식이 서울 가서 공부하다가 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오느라고 10년을 아니 20년을
넘게 객지로 나돌다가도 집에 와서 밥 먹으면 옛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의식 못하는 3살 때 행위가 무의식에 남겨있기 때문이라고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책에
적어놓았다.
밥 짓는 냄새가 우리를 자극하는 것이 무의식을 일깨워 주는 행위이다.
변할 수 없는 것이 무의식이고 무의식이 있는 한 맛은 잊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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