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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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산다.
오래 살다보면 나이 같은 건 다 잊어먹는다.
미국인들은 언어에 존댓말이 없으니 나이가 들었건, 젊었건 모두 you다.
옷은 그 사람의 행동을 보여주고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
말에 존칭이 없다는 것은 그냥 맞먹자는 것이다.
나이 따지지 말고 그냥 터놓고 지내자는 게 어떤 면에서는 좋은 것 같다.
미국인들은 동양인의 나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다가 말까지 터놓고 하다보면
이건 내가 늙었는지 젊었는지 알 길이 없다.
미국은 나이에 대해서 차별하지 못하게 법으로 정해놓았다.
이력서에 나이를 적으면 안 되고 인터뷰에서 나이를 묻는 것은 위법이다.
나이 차별이 없으니 늙었어도 능력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도전이 가능하다.

그러다가 한국에 가면 젊은이들이 노인 대우를 해 준다.
한국에서 단체 여행을 가면 아버님, 어머님 하면서 깍듯이 모시더니 그런 때도 지났다.
지금은 그냥 할아버지다. 우대를 받는 쪽에서는 오히려 불편하다.
한국에서 사는 노인들은 당연하게 느끼겠으나 미국 젊은이들과 터놓고 말하다가
한국 젊은이의 우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당황스럽다.
가는 곳 마다 노인 대우를 받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당신은 늙었으니 쉬라고 밀어내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무슨 일이든지 해 보려고 하면 나이 제한이 따른다.
제한만 따르는 게 아니라 나이 때문에 주눅이 들면서 ‘나이 컴플렉스’에 걸렸다.

별로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나이를 먹었는지 어떤지 잘 모르고 산다.
어쩌다가 누구라도 만나게 되면 내가 늙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비교하면 불행해 진다고 했다.
나이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돼서 그냥 넘기기도 어렵다.
그보다도 책을 읽다가 20대 젊은 청년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때 70대 고령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서 하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찔끔한다. 70이 고령이라고?
나는 그보다 더 많은데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도 나는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젊은이들은 내가 꼬부랑 할머니 같은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나도 젊었을 때 길을 가다가 복덕방에 모여 앉아 담배나 피우면서 소일하는 노인들을
보고 지금 젊은이들과 똑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대화는 10년 정도 사이에서 통하는 거지 차이가 크게 나면 의사소통 외에 공감은 얻기
어렵다.
젊은이들은 노인과 말 섞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해 봤자 잔소리나 듣던가 아니면
말이 길어질 게 뻔해서다. 그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세대 격차를 실감한다.

<어르신들 카톡으로 말도 안 되는 영상들이 떠돌아다니네요.
저희 어머니가 카톡으로 이런게 왔다면서 영상을 보여주는데 정말 어이가 없네요.
저희 어머니가 직업 특성상 나이드신 분들을 자주 만나는데 나이드신 분들은 거의 다
박근혜 편이라고 그러십니다.
아마 저런 영상들도 그에 한 몫 한다고 생각하네요.
TV가 모두 좌파 쪽으로 기울어진 말만하는데.>

이런 글에 달린 댓글은 더욱 가관이다.
“저희 집도 그럼 ㅋ 나쁜 최순실 만나서 불쌍하다고…….”
“걔가 당장 계엄령 내려서 탱크 몰고 나오고 총 들고 나와서 다 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친 놈이애요ㅋㅋ.”
“총알이 아깝다는 말은 하더군요.”
“좌파의 최면은 무슨… 지네들이 하는 짓거리가 수구꼴통의 최면인데 말이죠.”
“그게 바로 최순실이 한거라고 말하세요.”
“나이가 들면 고집이 쉽게 안 꺽기죠. 온갖 팩트나 반박하는 자료를 올려줘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물에 갇힌 개구리마냥 그냥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 뿐이죠.“
“카톡 접수한 게 누구더라,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죠 에혜.”
“이런 건 정말 법으로 응징해야 하는데…… 누가 좀 나서 주면 좋을 텐데.”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대화가 안 통한다고 한다.
나도 젊었을 때는 장모님과 대화가 안 통했다. 그저 네네 하고 들어 들였을 뿐
실제로 동의하지 않았다.
지금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터인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늙으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더니 정말 그래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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