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속, 며느리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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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딸네 옆집에 한국 사람이 이사 왔다.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이사 와서 산지 한참 돼서야 그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부부가 UC 버클리에서 생물학 석사를 받고 지금은 마운틴뷰 연구소에 근무한단다.
옆집 사정은 딸이 알아내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내 아내가 다 알아낸다.
같은 한국인이어서도 그렇겠지만 잘 물어보는 사람은 많이 알게 되어 있다.
왼쪽 옆집은 한국인 부부가 살지만 오른쪽 옆집은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이 딸린
미국인 싱글 맘이 산다.
싱글 맘이 그러는데 한국인이 이사 들어온 집은 먼저 건축업자가 살면서 집수리를 잘해
놨다고 한다. 집도 수리하고 정원도 잘 꾸고, 집 가격을 올려 받고 판 집이다.
방 둘 짜리 집을 방 셋 짜리로 넓혀 놨으니 그동안 노동한 인건비 풀러스
충분한 이익금을 챙겼을 것이다.

한국인이 사는 옆집 앞마당에 잔디가 어른 정강이까지 자랐다.
저렇게 길게 자란 잔디는 처음 봤다.
이사 온 이후 한 번도 잔디를 깎지 않았다.
잔디는 지난겨울 많은 비를 흠뻑 맞으며 자라고 싶을 만큼 자랐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물도 줘야 하는데 물을 안 줘서 누렇게 변색해 간다.
나는 딸에게 저 집 잔디가 너무 자랐다고 지적해 주었다.
딸더러 가르쳐 주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해 주었다.
옆집 부부는 미국으로 유학 와서 지금까지 공부만 했지 다른 건 해 보지 않았으니
미국 생활에 대해서 아는 게 없을 것이다.
앞마당의 잔디를 깎아야 하는 것도 모르고 살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딸이 그러는데 잔디를 깎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더란다.
다만 어떻게 깎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렇지……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아파트나 개인 집에서 살아도 딱히 정원을 가꿀 일이 없다.
나도 한국에서 살아봐서 알지만 잔디를 깎아본 적이 없다.
그림에서나 그린 하우스가 아름답다고 보았지 누가 스스로 가꿔야 한다는 걸 알았겠는가?
가꾸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걸 알기나 했던가?
그러나 미국 집은 앞마당 뒷마당 정원을 가꿔가며 살아야 하는데 정원의 기본은 잔디밭이다.
그 집 잔디를 얼마나 잘 가꾸느냐를 보고 그 집의 생활형편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잔디를 안 깎고 보고만 있는 걸로 봐서 옆집 한국인들이 필시 몰라서 그럴 거라고
짐작했다.

여기서 미국인 특징 중의 하나는 묻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는다.
눈치가 없어서 그러는지 척 보고 모르는 것 같으면 가르쳐 주면 좋으련만, 입 다물고
보고만 있다. 잔디를 안 깎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다.
한국인의 특징 중의 하나는 물어보는데 미숙하다는 점이다.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을 묻지 않는다.
체면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물어봤다가 무안당할까 봐 그러는지 선뜻 나서기를 꺼린다.
필시 한국 교육 시스템에 꼬치꼬치 묻지 못하게 하는 어떤 숨은 힘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딸도 한국인들이 새로 시작하는 미국 생활의 어려움과 미숙함에 대해서 나만큼 안다.
딸은 저 집 부부는 잔디를 어떻게 깎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잘 자라는지 알지 못할 것이라며
한 수 더 떠서 자신이 할 줄 모르면 가드너를 시켜서 잔디와 정원을 가꾸라고 해도 될 터인데 어떻게 가드너를 부르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했다.
하긴 그렇다. 60달러만 주면 월남인 가드너가 한 달에 두 번 와서 관리해 줄텐데……

한국인은 눈치껏 보고 배우기도 하지만 눈치를 봐 가면서 가르쳐 주기도 한다.
나는 아내더러 시간 나거든 한번 들려 가르쳐 주라고 했다.
시어머니 입에서 잔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묻지 않는 며느리를 보고 있자니 속이 터져서 그러는 거다.

 

 

1 Comment

  1. 비풍초

    2019년 5월 7일 at 1:43 오전

    속 터질 때, 블로그에 써 올리면 좀 .. 조금 나아지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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