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로 붐비는 벼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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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 벼룩시장에 가려고 차려 입고 나서려는데 TV에서 오클랜드 에이스
야구 중계를 시작한다.
가장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놓칠 수가 없어서 그냥 주저앉았다.
운동 경기라는 게 지던 이기던 내편이 있으면 보지 않을 수 없다.
경기에 빠지다 보면 내편은 늘 파인 플레이만 보이고 상대편은 거친 플레이만 보인다.
내편이 질 때면 늘 억울하게도 실수 때문으로 돌리고 이기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실수 때문에 첫 회부터 2점을 내주더니 결구 만회하지 못하고 넘어진다.
매사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제대로 풀리기 마련이다.

일요일은 아침부터 안개가 끼고 찌 푸드 한 게 영 갤 것 같지 않다.
오후 늦게야 해가 나면서 따뜻하다. 벼룩시장을 가 보기로 했다.
이 지역에 벼룩시장은 여러 곳에 있다. 모두 수공예품이나 귀한 물건 아니면
올개닉 채소 등 흥미 있어할 만한 물건들을 취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가는 벼룩시장은 멕시칸들만 꼬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벼룩시장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인 멕시칸들이 쓸 돈이 어디 있으면 비싼 물건을 언간 생심 넘볼 수나
있다더냐.
가난한 멕시칸들을 상대로 하는 벼룩시장이라 물건들도 싸구려만 취급한다.

차고 다니는 시계 배터리가 죽어서 배터리 교체하려고 갔다.
카지오 손목시계 두 개, 세이코 퀼트 디지털시계 해서 내 시계 3개 하고
아내 시계 하나를 들고 갔다.
돌아다니다가 시계 배터리 갈아주는 이동 간판을 세워놓은 좌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배터리 가는 건 부수입이고 본업은 좌판에 늘어놓은 물건을 파는 거다.
손목시계도 팔고 스마트폰 차지 연결선도 있다. 그중에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은
주머니칼이다. 약 12cm 정도 크기의 칼로 폈다 접었다 하는 주머니칼이다.
종류도 다양한 것으로 보아 인기 종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인인 중늙은이 부부가 좌판 뒤에 서있는 게 마치 한국사람 같다.
하지만 한국인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마당에 불쑥 한국말을 꺼내기도 그렇고……
영어로 시계 배터리 바꾸는데 얼마냐고 물었다.
25달러에 시계 4개 배터리를 바꾸기로 했다.

배터리 가는 동안 좌판 앞에 서서 기웃거리는 손님들을 살펴보았다.
멕시칸 젊은이들이 좌판 앞에서 이것저것 만졌다 놨다 한다.
만지는 게 뭔가 했더니 주머니칼이다.
이 칼, 저 칼 만지작대면서 흥미 있어하기도 하고 갖고 싶어 하는 심정이
얼굴에 나타난다.
다음 젊은이들 역시 칼을 펼쳐보기도 하고 손에 잡고 활용도를 재보기도 한다.
또 다른 젊은 멕시칸은 잭크 나이프를 집더니 보당을 눌려 폈다 접었다 하면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칼과 교환하자고 하니 주인 여자가 그러라고 한다.
젊은 멕시칸은 자신의 칼을 놓고 잭크 나이프를 들고 갔다.

젊은 멕시칸들은 왜 칼에 집착할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벼룩시장에 드나드는 멕시칸들 중에는 불법 체류자들이 많다.
불법체류자 신분은 늘 불안한 상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자신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총을 소지하고 다니기에는 남들 눈에 띄기도 쉽고 총이 오히려 숨어 다니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칼은 숨기기도 쉽고 설혹 경찰에게 검문을 당하더라도 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 염려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머니칼을 선호하는 것이다.
불안한 세상에서는 내가 나를 지키는 길 박에 없다.
남자들의 세계라는 게 죽느냐 죽이느냐의 험난한 세상이다.

손목시계를 처음 사면 배터리 수명이 대강 십 년은 간다.
새 시계를 팔 때 10년 개런티로 팔기도 한다.
나는 배터리만 갈아 넣으면 또 십 년은 가는 줄 알았다.
지난번에 한국에 갔을 때 세이코 퀼트는 배터리를 갈았다.
그런데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수명이 다 되고 말았다.
나는 서울에서 배터리 갈아주는 사람이 중고 배터리를 넣었구나 의심했다.
이번에는 속지 않으려고 새 배터리를 넣으라고 당부했다.
배터리를 팩에서 뜯어 새것임을 보여주고 갈아주면서 6개월은 보장한단다.
6개월이라니? 10년이 아니고?
잘하면 1~2년도 가지만 6개월은 보장해 준단다.
아플사 6개월 박에 못 간다면 뭐 하러 시계 여러 개를 한꺼번에 배터리를 갈겠는가?
디지털 시대는 시계 사서 배터리 다 되면 버리고 새로 사라는 시대이지
배터리 갈아가면서 쓰라는 시대는 아니라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배터리 다 되면 버리고 새로 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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