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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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날이라고 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해도 안 나고 날씨도 쌀쌀했다.
일기 예보로는 오후가 되면 화창할 것이란다.
일기예보를 믿고 옷을 가볍게 입었다.
매년 어머니날엔 장모님 산소에 간다.
막내딸이 문자도 안 받고 전화 연결도 되지 않는다.
큰딸은 교회에서 행사가 있다면서 갈지 말지란다.
“하는 수 없지 우리라도 가야지.”
오후 3시에는 손주 녀석 테니스 가야 한다면서 며느리가 일찍 다녀왔으면 좋겠단다.
며느리 스케줄에 따라 서둘러 공원묘지로 향하는 중이다.
장모님 산소가 한 시간은 달려야 하는 곳에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막내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벌써 산소에서 기다린단다.
“얼씨구, 연락도 안 닿더니 먼저 와 있다고?”
그럴 테지 안 가면 안 간다고 했겠지…
공원묘지에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자동차가 비비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의 추석처럼 너나없이 엄마 찾아 온 모양이다.
묘지마다 꽂아놓은 꽃이 다채롭다.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정오가 되면서 날이 개고 화창하다.
방문객이 많다 보니 묘소에 꽃 꽂는 플라스틱 화병도 거덜이 났다.
수돗물 근처 묘역의 재활용 화병들은 다 뽑아가고 없다.
멀리까지 가서야 빈 화병을 구했다.
묘소마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눈다.
처음 보는 나더러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해서 가족사진도 찍어 줬다.

미국에서 어머니날은 어머니 산소 찾는 명절이다.
소주를 2병씩이나 사야 했다.
가족이 늘어나다 보니 한 병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자손 한 사람이 한 잔씩만 올려도 장인 장모님 술 취하게 생겼다.
세 살짜리 손녀도 작은 손으로 잔을 올렸다.
넓은 공원묘지에 방문객은 많다만 산소에 술 따르고 절하는 가족은 우리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배웠으니 아는 대로 가르쳐 줄 수박에…

장모님 바로 옆에는 겨우 18년 살고 간 처녀가 누워있다.
걸어가면서 묘지석을 훑어본다.
똑같이 네모반듯한 크기로 군대 사열식 하듯 누어있다.
모두 이름 석 자만 적혀 있을 뿐 그분이 부자였는지 가난했는지 알 수 없다.
‘회장 했다‘ ’명문대 출신이다’ 이런 거 쓰여 있는 묘지석은 못 봤다.
하나님은 네가 소유한 모든 걸 다 버리고 오라고 하셨다.
심지어 네가 베풀었다는 알량한 자선도 결국은 교만이니 버리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묘지석들을 훑어보면서 알았다.
하나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람은 한 분도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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