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울릉도에서 사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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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울릉도에서 사진을 보내왔다.
울릉도는 내가 가 봐서 아는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울릉도 해안 산책로를 사랑한다.
한번 걸어봤는데 반하고 말았다.
친구가 울릉도에 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일 먼저 물어본 게 “해안 산책로 걸어봤니?”다.
지금은 독도를 관광하는 중이고 내일 걸을 거란다.
나는 해안 산책로를 보고 너무 아름다원서 혼자 걷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안 산책로가 마치 내 것인 양 숨겨두었다가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벼르는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이제 은퇴도 했겠다, 금년에는 울릉도에 같이 가려고 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또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울릉도 해안 산책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친구 말로는 지금은 사람이 많아서 복작댄다고 했다.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옛날에도 그랬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한가하게 돌아볼 수 있는지 나는 알지…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 내가 알아본 자료로는 여름 성수기에는 울릉도 가는 여객선 티켓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여행사에서 여객선 좌석을 몽땅 예약해 버려서 일반인에게 개별적인 표는 없단다.
싫든 좋든 여행사를 따라가야만 한다.
첫날 도동 여관에서 자면서 여행사 직원에게 일출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좋은지 물어보았다.
여객선 터미널 뒤쪽으로 가면 바다를 따라 해안 산책로가 있는데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출도 보고 아름다운 길에 반할 거라고 가르쳐준다.
아무리 여행사 직원이라고 해도 현지인만 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잠자러 가기 전에 여관 집
할머니에게 같은 걸 물어보았다.
“가 본 일은 없지만 다들 그러는데…” 하면서 똑같은 장소를 가르쳐 준다.
할머니와 말을 트다보니 이것저것 울릉도에 관해서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육지에서 울릉도로 시집왔다고 했다.
신혼 때 아침에 눈을 떠도 밖이 밝지가 않더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눈이 지붕까지 덮는 바람에 방에서는 날이 밝는 걸 모르겠더란다.
6.25때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만 봤지 전쟁은 모르고 살았단다.
할머니 말대로 울릉도에는 모기는 없었다. 덕분에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하게 잘 수 있었다.
돌풍이 불어와 창문을 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3시다.
창밖을 내다보니 마른바람이 몹시 불어 나뭇가지가 부러질 듯 휘어진다.
바람이야 불던 말든 일어나서 슬슬 준비하고 있다가 4시가 되기도 전에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의 시원한 선들바람은 어디로 가고 후덥지근한 더운 바람이 바다에서,
그것도 태풍처럼 무섭게 불어왔다.
사람이라곤 그림자조차 없는 새벽길을 걸어가는 게 상쾌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으스스하고 꺼림칙했지만 뭐 별일이야 있겠나 하면서 걸었다.
여객선 터미널을 돌아서 가보니 정말 깎아지른 절벽에 한 사람이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책로가 나타났다. 일렬로 걸어야지 둘이 나란히 서서는 갈 수 없을 만큼 좁은 산책로의
왼편은 높은 절벽으로 되어있고 오른편은 바다에 이어져 있어서 파도를 피부로 느꼈다.
파도가 무섭게 밀려와 부딪히고 깨져나갔다.
전깃불이 가로등처럼 드문드문 있다고는 해도 깜깜한 새벽길에 사람은 나 혼자인데
꼬불꼬불한 산책로를 한 구비 돌아가면 굉음과 함께 파도가 달려들어 집어삼킬 것 같이
산책로에 덮쳤다가 물러갔다. 잘못하다가는 파도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아 겁이 났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깜깜해서 찍히지 않았다.
나 혼자여서 걷다 보니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무모한 짓 같아서 다시 돌아와 한 30분 정도 서성대다가 날이 훤해지기에 다시 걸었다.
여명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해안산책로는 정말 잘 꾸며놓았다.
거센 파도가 산책로를 덮쳤다가 부서지면서 하얀 물거품으로 산화되어 물러나는
광경은 참으로 볼만했다. 이런 장관을 혼자서 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절벽을 깎아 길을 내면서 막힌 곳은 뚫었으니 당연히 화산 바위 속살이 드러나 보였다.
화산 바위는 형형색색의 층으로 이루어져 불빛에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일출이 있다고 했는데 해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붉어오는 하늘도 보지 못했다.
행남 등대로 올라갔다. 행남 등대에서는 저동이 보이고 촛대바위가 한눈에 들어왔다.
갈매기 섬도 보이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도 보였다.

행남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절벽 밑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를 건설해 놓았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저 길을 걸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다.
언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었더냐는 식으로 바다는 조용하고 잔잔했다.
잔잔한 바다는 열길 물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청정 바다다.
캘리포니아의 구정물 같은 바다와는 비교가 안 되리만치 깨끗했다.
낭떠러지를 오르내리게 만든 나사 모양의 철계단을 내려가면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을 건설해 놓았다.
새벽이라 걷는 사람은 나 혼자다.
생각해 보라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혼자 전세 내어 걷는다면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하겠는가?
해안 산책로를 다 지나오도록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도 한 명 보지 못했다.
갈매기 섬이 지척에 보였다.
갈매기가 높이 날면 폭풍이 온다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는데 오늘 갈매기는 오징어 배만
따라다닌다.
저동항에는 오징어배로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예전에는 오징어잡이를 나가면 등불 밑에서 어부들이 늘어서서 오징어 낚시를 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오징어를 잡았는데 요즈음은 어부 대신 기계가 다 해치운단다.
오징어의 수명은 고작 일 년이다.
일 년 안에 연애하고 아기 길러 대를 잇게 해야 한다.
사람만 바쁜 게 아니라 오징어도 바쁘다.
오징어 하면 울릉도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울릉도에는 오징어가 별로 없다.
실하고 좋은 오징어를 잡으면 직접 육지로 가서 부린다. 가격 때문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울릉도에는 하늘 바람이라는 게 불어 오징어가 잘 마르고 청정 하늘이라
파리 한 마리 없이 깨끗하게 마른다.
공해와 파리가 다 빨아먹다 남긴 육지 오징어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 바람에 나도 오징어 한 축 사고 말았다.
이게 다 십년 전, 울릉도 갔을 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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