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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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에 새 가정이 이사 왔다.
먼저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이 있는 젊은 부부 교사가 살았다.
한 번은 우리 집 리빙 룸 유리창에 금이 갔다.
나중에 발견했기 때문에 딱히 누구의 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필시 방과 후에
앞집 아이들이 우리 집 앞 잔디에서 야구를 한답시고 공을 던지다가 앞 유리에 금이
가게 하지 않았나 의심만 할 따름이다.
전에도 아이들이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걸 보았으니까.
결국 집 보험에서 커버는 했지만 의구심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랬던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서 아예 집을 팔고 워싱턴 주로 이사 갔다.
예전에 나와 같이 일하던 매니저가 직업상 워싱턴 주 시애틀로 이사 간 일이 있다.
한참 살다가 놀러 와서 하는 말이 워싱턴 주는 집값이 싸서 캘리포니아의 집을 팔고
워싱턴 주에 집을 사면 고래당 같은 집에서 산다고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난다.

앞집을 시장에 내놓고도 한동안 팔리지 않더니 어느 날 멕시칸이 샀다는 말을 들었다.
팔렸다고 하면서 이사는 들어오지 않고 사람들이 집수리를 한다.
멕시칸 일꾼들이 여럿이 와서 한 달도 넘게 집을 수리했다.
문을 닫아놓고 안에서 무엇을 수리하는지 맨 날 부시고 난리법석을 떤다.
내가 앞마당에 나서면 건축업자인 듯 한 멕시칸이 내게 다가와 묻지도 않은 말을
스스로 변명하듯 조금 수리하는 중이라고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떠들다가 갔다.
하는 짓거리를 보고 그때 이미 알아봤다.
시에서 허가받지 않고 집수리를 하느라고 내게 아양을 떠는구나 하는 것을…이
미국 할머니들 같았으면 제때 고발했겠지만 나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젊은 멕시칸 부부가 이사 들어왔다.
남편이 자동차 바디샵을 운영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남동생 둘이 있다.
아이 둘을 사립학교로 보내는 거로 봐서 돈은 괜찮게 버는 모양이다.
부인 아버지가 집을 사서 수리까지 해 준거란다.
부인 아버지는 옆집 잭크 씨에게서 새로 산 집의 역사를 소상이 들어 알아냈다.
풍수지리는 아니지만 집은 이사 들어가서 잘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잘 안 되는 집도 있다.
잘된다, 잘 안 된다는 말은 집안이 번성하느냐를 놓고 하는 말이다.
지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느냐 할는지 모르겠으나 아니면 미국인들이 그런 걸 따지느냐
하겠지만,
미국인들도 먼저 주인이 어땠느냐고 묻는 것은 바로 이 점을 알아보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구태여 기분 나쁜 집을 사서 들어갈 이유도 없고, 이 집에 살던 사람이 부자 돼서 나갔다는 집을 마다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집은 여자와 같아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
잘나가는 남편을 만나면 덩달아 사모님이 되는 거고 못된 서방을 만나면 구박받고 사는 찾아다니면서 살았다.
것처럼 훌륭한 집이 되느냐 초라하고 너절한 집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집 주인에게 달렸다.
나는 먼저 살던 사람들이 집을 잘 가꾸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무사히 키워서 대학 보내고
이사 나가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 이전 주인은 미스터 코리아라고 이름이 Corea에 조상이 아탈리아가 돼서 혹시 그 옛날
이탈리아로 끌려간 한국인의 후예가 아닌가 물어보았으나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도요다 딜러를 하다가 일찍 은퇴해서 맨 날 집수리나 하며 살다가 싸크라멘토 은퇴촌으로
이사 갔다.
미스터 코리아는 집을 애지중지하며 뒷마당에 수영장도 넣고 맨 날 손볼 것이 없나
찾아다니면서 살았다. 그가 아끼는 만큼 집도 아름다워졌다.
집은 사람과 같아서 운명이 있기 마련이고 밝은 운명을 타고난 집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도
늘 밝고 잘 피어나기 마련이다.
내가 풍수지리를 알아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집터 땅속에 수맥이 흐르지 않으면 좋은
집터라 하겠으나 수맥의 존재를 어찌 알겠는가?
다만 눈에 보이는 햇볕이 골고루 잘 들면 우선 좋은 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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